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삼성전자가 2020년 연초부터 준법경영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올해 초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을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한데 이어 13일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부회장)와 고동진 IM부문 대표이사, 김현석 CE부문 대표이사(이상 사장)를 포함한 사장단과 임원진이 모두 참여한 준법경영 서약식을 진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개입한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삼성전자는 경영 쇄신을 위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는 등 여러 가지 변화를 꾀했다. 삼성전자는 스스로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보였으나 일각에서는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내놓은 쇄신안을 언급하며 ‘면피용’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2016년 1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기로 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그룹 내 각 계열사의 사장단 인사 등 주요 업무를 도맡아 해오던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삼성전자를 포함한 각 계열사들은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그룹 총수의 역할을 해오고 있지만 경영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2008년까지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지내며 경영에 직접 참여했던 것과 달리 이 부회장은 대표이사직은 유지하지 않은 채 대외활동에만 주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국정농단 사태 대법원 파기환송심 이후 이 부회장은 등기이사 임기도 연장하지 않아 같은 해 10월 등기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홍라희 여사는 2017년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자 같은 해 3월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직에서 물러났다. 삼성 오너일가가 구속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밖에 준법경영에 대한 의지도 확대했다. 국정농단 사태를 만든 핵심이 된 재단 출연금과 관련한 사태를 막기 위해 10억원 이상 출연금은 이사회 결정을 통해 집행하도록 했다. 

9일 삼성전자가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하기로 하고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를 위원장으로 내정했다. 사진은 김 변호사가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여용준 기자]

또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장단과 임원진이 앞장서서 준법경영 실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준법감시위는 법조계와 시민단체, 학계 인사들로 구성되며 회사 내부인사로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고문이 참여한다. 

이같은 삼성의 변화는 2008년 삼성 경영 쇄신안과 일부 닮은 부분도 있다. 삼성 경영 쇄신안은 2007년 11월 삼성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특별검사(삼성특검)의 수사가 이어진 후 등장했다. 

삼성특검은 불법 비자금 조성과 정치자금 로비 의혹,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배정과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 발행 등 경영 승계 의혹 등에 대해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이건희 회장은 조세포탈 등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회장과 주요 임원들은 이후 200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배정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다만 불법 경영승계와 관련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학수 당시 삼성 부회장은 2008년 4월 22일 ‘삼성 경영 쇄신안’을 발표한다. 주요 내용은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홍라희 여사 역시 미술관 관장과 문화재단 이사직에서 물러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재용 당시 전무 역시 삼성전자 COO에서 물러나 해외 사업장에서 근무하기로 했으며 이학주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역시 경영에서 물러난다.

또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고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를 모두 실명으로 전환했다. 금융사업을 투명화하고 은행 진출은 없음을 선언했다.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4~5년 내 매각하기로 했으나 지주회사 전환은 현실적인 문제로 당장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대외적으로 그룹 대표이사직은 이수빈 당시 삼성생명 회장이 맡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쇄신안 이후 2010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했고 전략기획실 대신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컨트롤타워가 생겼다. 홍라희 여사 역시 2011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직으로 복귀했다. 

특히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이 결성되기도 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흐지부지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준법감시위가 삼지모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또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중 준법감시위 위원장이 내정됐다는 점도 이 기관이 ‘면피용’이라는 주장이 나온 이유 중 하나다. 파기환송심 당시 정준영 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권력자로부터 (뇌물) 요구를 받더라고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제시해달라”는 숙제를 내 바 있다. 이 때문에 준법감시위가 법원의 숙제에 대한 삼성의 대답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13일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삼성전자 준법실천 서약식'에 참석한 삼성전자 대표이사들이 서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 김기남 부회장, 고동진 사장). [사진=삼성전자]

삼성은 준법감시위가 ‘삼지모’와 분명 차이가 있으며 ‘면피용’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지모’와 달리 준법감시위는 회사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기관”이라며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밝혔다. 

김지형 내정자 역시 “처음에는 삼성전자가 파기환송심 재판에 대한 면피용이라고 생각했다”며 삼성전자의 위원장 제의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직접 면담한 끝에 면피용이 아님을 확인하고 위원장직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는 “삼성이 먼저 변화의 문을 열었다. 무엇이 계기가 됐든 삼성이 먼저 ‘벽문(壁門)’을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를 향한 신호”라며 “진의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불신을 넘어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삼성이 풀어내야 할 과제다. 동시에 위원회의 몫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내정자는 이 부회장과 만나 “위원회의 구성부터 시작해서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해 달라”는 요구를 했고 이 부회장이 이를 흔쾌히 수락한 만큼 이전과 다른 감시기구로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준법감시위 구성원 역시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로 삼성전자와 싸웠던 김지형 변호사가 위원장으로 내정된데 이어 대기업 부패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봉욱 변호사, 재벌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진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이 참여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진정성을 찾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여전히 많지만 준법감시위는 분명 의미 있는 변화가 될 것”이라며 “삼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기업들도 변화를 겪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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