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명동에서 시민들이 한 시중은행 대출 금리 안내판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명동에서 시민들이 한 시중은행 대출 금리 안내판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제원 기자] 연말로 들어서면서 대출 시장에 한파(寒波)가 불어닥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시장금리는 반대 방향을 향하고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는 연말로 가면서 점차 무게를 더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예금금리는 내려가지 않는 가운데 대출금리가 가파른 속도로 오른다는 것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지난달 16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1.5→1.25%)에도 아직 예금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고 있다.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 등 외국계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낮췄지만, KB국민과 신한, 우리, KEB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동참하지 않고 있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와 아예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고정금리형(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근 4주 사이 0.29∼0.55%포인트 올랐다.

이는 기준금리를 1~2회 인상했을 때 뒤따르는 수준의 오름 폭이다.

예금금리가 내려가지 않고 대출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은행을 통한 유동성 추가 공급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금융기관 간 초단기금리인 콜금리를 낮추고 이어 장·단기 시장금리 하락, 예금·대출금리 하락 등 순환 구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연결고리가 끊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추가 유동성 공급을 통한 경기 부양 효과도 떨어진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예금·대출금리가 다른 방향을 향하는 첫 번째 요인은 시장금리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당일 연 1.320%에서 이달 8일 1.518%로 0.198%포인트 올랐다.

지난번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인 7월 18일 1.345%이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8월 19일 1.093%로 저점을 찍은 이후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10월 기준금리 인하에 시장금리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장금리의 이런 흐름은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낮추지 못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시장금리와 기계적으로 연동된 대출금리는 자동으로 오름세로 전환해버렸다.

기준금리 인하 이후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되레 회수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시중은행 입장에선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가 연말로 갈수록 발등의 불이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예대율(대출/예금 비율) 규제는 예대율을 산정할 때 가계대출은 가중치를 15% 상향하고 기업대출은 15% 하향 조정하는 방식이다.

주택대출로 돈을 버는 국내 시중은행들의 영업구조에서 이처럼 산식을 바꾸면 예대율이 100%를 넘기는 은행이 나올 수 있다. 은행들 입장에선 예금금리를 높게 가져가면서 예금을 유지·추가 유치하고 가계대출 금리는 높여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규제 시행 시점은 내년이다. 즉 남은 2개월 동안 예대율을 100% 이내로 맞춰놔야 한다. 역시 연말까지 맞춰야 하는 대출 총량규제 역시 당면 현안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을 5%대로 제한하고 있다. 가계대출을 이미 6% 이상으로 늘린 은행 입장에선 이달과 내달에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일부 은행들이 시장금리 인상분뿐 아니라 가산금리나 우대금리까지 조정하면서 대출금리를 끌어올리는 것도 가격을 올려 수요를 통제하자는 취지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난번 기준금리 인하 역시 대출 증가로 연결되지 않았다. 한은이 지난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지만 지난 8월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6조30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8월의 6조6000억원, 2017년 8월의 8조8000억원에 미치지 못한 수치다.

9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3조1000억원이었다. 2018년 9월의 6조1000억원, 2017년 9월의 4조4000억원을 크게 밑돌았다.

올해 들어 9월까지 누적 가계대출 증가액은 33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0조1000억원, 2017년 같은 기간의 64조5000억원과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기준금리를 낮춘 상황에서 되레 신용이 위축되는 데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대출 규제가 워낙 강력하다 보니 정책금리를 낮춰도 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금융당국이 경기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 대출 규제를 재점검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정책금리 인하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은 먼저 시장금리 흐름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맞다"면서 "통화정책의 시장 전달 경로를 살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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