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한 은행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한 은행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제원 기자] 시행 10일째를 맞은 '오픈뱅킹(Open Banking)'이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시범 운영에 들어갔음에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상당수 은행이 사전에 약속했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일부 은행은 사전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과열 경쟁 양상도 보인다.  

8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은행권부터 도입된 오픈뱅킹 서비스와 관련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 등 5대 주요 은행 가운데 특정 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은행의 예·적금 정보가 조회되지 않고 있다.

오픈뱅킹은 은행이 보유한 결제 기능과 고객 데이터를 제3자에게 공개하는 제도다.

은행권은 오픈뱅킹을 시행하기에 앞서 입출금 계좌뿐만 아니라 예·적금 계좌와 펀드 계좌 정보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출금은 입출금 계좌에서만 가능하게 하고 예·적금 계좌와 펀드 계좌는 잔액 조회만 되도록 했다.

오픈뱅킹 시행일 이후 주요 은행의 애플리케이션에서 타 은행의 입출금 계좌는 문제없이 조회가 가능했다. 하지만 예·적금은 특정 은행의 정보만 조회될 뿐 나머지 은행은 오류 메시지가 떴다.

업계와 금결원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입출금 계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실명확인 기능에 대한 규약이 없는 탓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적금 계좌를 등록할 때 인증방식이 은행마다 다르다. 이로 인해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해 인증이 안 되는 탓에 계좌 정보가 한 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은행 간 인증방식이 다르면 아예 주요 은행 모두가 조회되지 않아야 했지만 특정 은행의 예·적금 정보는 다른 은행에서 조회가 가능해 이런 해명으로 현 상황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예·적금 정보를 아예 공유조차 하지 않은 은행도 있었다. 정보 공유는 합의 사항이지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금결원에서 시스템 문제를 보완해주면 모든 정보를 제공해줄 텐데 그렇지 않아 각 은행이 주저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며 "우리만 제공하기 곤란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합의에 따라 예·적금 정보를 제공한 특정 은행만 고객 정보를 노출해 '손해'아닌 손해를 본 셈이다.

일부 은행에서는 이체 시 오류도 있었다. 이는 이체를 출금과 입금 거래로 구분한 오픈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방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컸다.

기존 방식에서는 출금계좌에서 돈을 출금해 입금계좌로 돈을 입금하는 과정을 하나로 봐서 입금계좌가 '사고 계좌'로 입금이 안 되는 상황이면 입금이 취소되고 그 돈이 원래 출금계좌로 자동으로 환급됐다.

하지만 API 방식에서는 출금과 입금이 별도 과정이어서 입금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원래 은행으로 돈이 돌아가지 않고 출금 거래를 새롭게 정정해주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지연이 발생했다.

과당 경쟁 조짐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A은행은 시행일보다 앞선 지난달 25일부터 사전예약을 받았다. 오픈뱅킹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오픈뱅킹 사용 동의를 하면 오픈캐시를 받을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사전에 고객들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사전 예약을 하도록 권유했다.

B은행 관계자는 "오픈뱅킹 실무자들끼리 개시일에 맞춰서 계좌를 열자고 약속했는데 A은행이 신사협정을 깨고 사전 계좌를 모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많은 고객이 다른 은행 계좌를 등록하게 하도록 직원들을 '독려'한 경우도 있었다.

C은행은 오픈뱅킹을 신청할 때 고객이 기입하는 항목 중 추천인을 써넣는 항목을 만들기도 했다. 직원별 오픈뱅킹 가입 실적을 확인할 수단을 마련한 셈이다.

C은행 관계자는 "오픈뱅킹뿐 아니라 비대면으로 예·적금, 펀드 등에 가입할 때에도 권유 직원을 기재하게 돼 있다"며 오픈뱅킹 가입을 '독려'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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