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스티븐 킹. [사진=위키피디아]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헐리우드 영화는 몇 년 전부터 심각한 소재 고갈에 시달리고 있다. 때문에 과거 영광을 누렸던 히어로 코믹스를 영화화하거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렌차이즈 영화를 리부트, 시퀄, 프리퀄 등을 만드는 방식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놀라운 점은 소위 ‘옛날 영화의 재탕’이 판을 쳐도 헐리우드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이다. 그만큼 대중문화의 유산이 풍부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헐리우드가 ‘재탕’을 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사랑한 수많은 소설가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SF소설가 필립 K. 딕(‘블레이드 러너’, ‘토탈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이나 첩보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모스트 원티드 맨’, ‘콘스탄트 가드너’ 등), 비정한 스릴러 소설의 대가 코맥 맥카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더 로드’, ‘카운슬러’ 등) 등은 헐리우드가 사랑한 대표적인 소설가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아우를 정도로 ‘헐리우드가 사랑한 최고의 소설가’를 꼽으라면 단연 스티븐 킹을 언급할 것이다. 1976년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를 시작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됐다. 이미 올해만 해도 ‘그것:두번째 이야기’, ‘공포의 묘지’, ‘닥터 슬립’ 등 스티븐 킹 소설 원작 영화들이 공개됐다. 

스티븐 킹의 주력 장르는 단연 ‘공포’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캐리’와 ‘샤이닝’, ‘옥수수밭의 아이들’, ‘미저리’, ‘1408’ 등은 오늘날까지도 관객들과 호러팬들에게 회자되는 걸작들이다. 그러나 때로는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 ‘스탠바이미’처럼 가슴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쓸 때도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과학적 이야기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의 이야기 중 상당수가 초능력이나 미지의 존재 등 초자연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소설 중에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도 여럿 있다. 

초능력을 소재로 한 영화 '닥터 슬립'.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올해 개봉한 ‘닥터 슬립’은 스탠리 큐브릭의 1980년 영화 ‘샤이닝’의 속편이다. 인물이나 배경은 영화 ‘샤이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정작 이야기는 영화와 다소 차이가 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상당 부분 각색해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스티븐 킹은 큐브릭의 ‘샤이닝’을 대단히 싫어했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각본을 써서 TV미니시리즈 ‘샤이닝’을 제작했지만 평단의 혹평을 들으며 잊혀졌다. 

‘닥터 슬립’은 영화 ‘샤이닝’의 배경을 따르고 있으나 이야기는 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때문에 영화 ‘샤이닝’을 기억하는 관객에게는 이야기가 다소 낯설 수 있다. ‘닥터 슬립’은 ‘샤이닝’이라는 이름의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이들을 잡아먹는 트루낫이라는 이름의 집단이 벌이는 대결을 다루고 있다. 

‘샤이닝’은 죽은 자와 대화하고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그 사람에게 빙의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다수의 초능력이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듯 ‘샤이닝’ 능력도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하다. 학계에서는 초능력 전반에 대해 ‘미지의 힘을 사용한다’는 점을 들어 뇌파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초기 영화 ‘스캐너스’는 뇌를 써서 초능력을 쓴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또 최근 영화인 뤽 베송의 ‘루시’나 브래들리 쿠퍼 주연의 ‘리미트리스’도 인간이 뇌를 100% 썼을 때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초능력과 관련해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2011년 1월 미국의 심리학자 대릴 벰이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라는 학술지에 인간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논문을 게재해 논란이 됐다. 대릴 벰은 미국 코넬대학교의 심리학자로 학계에서는 ‘자기지각 이론’을 발표해 호평을 받은 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발표한 그의 논문은 학계에서 “말도 안되는 관심병”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의 논문은 이후 과학계 전반에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게 한 성과를 거뒀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초능력을 과학적으로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샤이닝’이나 ‘캐리’, ‘데드존’, ‘그린마일’ 등 영화들은 초능력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초능력으로 야기되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는 초자연 현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408’이나 ‘미스트’, ‘공포의 묘지’ 등은 각각 귀신들린 방, 미지의 세계 속 괴물, 죽은 생명을 살리는 주술 등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들은 초능력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설명이 쉽지 않다. 누가 나서서 설명이라도 했다가는 대릴 벰처럼 될 수 있다. 

스티븐 킹이 쓴 몇 안되는 SF영화 '러닝맨'.

다행스럽게도 스티븐 킹은 아주 대놓고 SF소설을 쓴 적이 있다. 이 작품들 중 2개가 영화화 됐는데 1987년 영화 ‘러닝맨’과 1992년작 ‘론머맨’이다. ‘러닝맨’은 폐쇄회로로 통제된 사회에서 살인누명을 쓴 주인공 리차드(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죄수들과 개조인간의 목숨을 건 사투를 다룬 TV프로그램 ‘러닝맨’에 강제로 출연한다는 내용이다. 

‘러닝맨’ 속 미래의 배경이 2019년이고 폐쇄회로로 통제된 사회가 중국의 빅브라더를 떠올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영화 속 미래는 꽤 설득력이 있다. 

이는 ‘론머맨’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상현실(VR)이 판타지에 가까웠던 1990년대 초반에 VR과 그것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는 점은 5G 시대 VR이 대중화되는 시점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하는 윤리적 문제다. 스티븐 킹은 이미 20여년전에 그 문제를 꺼내들었다. 

이밖에 스티븐 킹은 기계가 자의식을 갖는다는 설정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B급 장르영화의 거장 존 카펜터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바탕으로 ‘크리스틴’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귀신 들린 자동차가 인간들을 공격한다는 내용이다.

스티븐 킹은 1986년에는 외계혜성이 지구를 스쳐 지나가고 기계들이 자의식을 가진 뒤 인간을 공격한다는 내용을 담은 ‘맥시멈 오버드라이브’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으나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심각하게 안 좋은 평가를 들었다. 

인간을 공격하는 자동차 '크리스틴'.

이들 영화는 ‘귀신 들린 기계’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을 생각한다면 아주 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스티븐 킹은 아서 C. 클라크나 필립 K. 딕처럼 대단한 과학적 성찰을 가진 작가는 아니지만 헐리우드가 사랑하고 관객들이 열광할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줄 안다.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의 이야기는 다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올해 극장에서 개봉한 3작품 외에도 넷플릭스에서는 ‘1922’와 ‘높은 풀 속에서’ 등이 공개됐다. 

1947년생인 스티븐 킹은 현재까지도 영화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더 반가운 점은 스티븐 킹의 아들 조 힐도 현재 세계 장르문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 조 힐의 소설 ‘뿔’은 ‘혼스’라는 이름으로 영화화 돼 2014년 국내에 개봉했다. 

스티븐 킹의 공포는 20세기 끄트머리를 지나 21세기에도 계속 이어질 모양이다. 디지털 시대에 그가 그려낼 초자연적 공포는 어떤 모습일까?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