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좌)과 LG화학 본사. [사진=각 사]
SK이노베이션(좌)과 LG화학 본사. [사진=각 사]

[이뉴스투데이 유준상 기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특허 소송전의 모양새가 ‘용호상박’이다. 양측의 입장과 해명이 나올 때마다 언론은 앞다퉈 보도하며 팽팽한 대립 구도를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가 내놓는 시각과 전망은 사뭇 다르다. 본지는 법리적 렌즈를 장착하고 양 사의 배터리 특허 소송전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1차 특허소송 들여다보니…특허침해금지·특허무효심판 소송 전부 SK 승리

2011년 12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특허침해금지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배터리 전쟁이 시작됐다. 자사가 보유한 ‘분리막 코팅 기법 특허(SRS, 한국 특허 775310)’를 SK 측이 침해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맞대응하기 위해 같은달 특허심판원에 LG화학 특허에 대한 무효심판(특허무효심판)을 제기했다.

특허심판원은 2012년 8월 LG화학의 특허가 무효라고 심결했다. LG화학의 분리막 특허에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본 것이다. LG화학은 그달 9월 특허법원에 무효심결 취소소송도 제기했으나 특허법원 역시 이 소에 대해 이듬해 4월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2전 SK 전승이다.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 소송에서 모두 패한 LG화학은 보유 특허에 대한 범위 정정(특허정정)에 나섰다. 그리고 난 뒤 상고심에 나섰다. 2013년 11월 대법원은 특허법원에 판결을 파기환송 했다. 이 부분에 대해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당사로 제기한 특허무효심판에서는 당사가 1심 패소했으나 특허를 정정한 후 무효심결 취소소송의 상고 사건에서 승리해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을 얻어냈다”고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법조계의 관점은 이같은 시각과 괴리된다. 특허정정은 특허 등록 당시로 소급 적용되기 때문에 유·무효 심리 대상이 되는 특허의 형질을 변경시킨다. 특허 자체가 변경되면서 법리적 판단이 불가해짐에 따라 하급심으로 돌려보내는 기계적인 행정절차에 불과했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이 법리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점한 것이라는 LG화학 측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특허 소송 중에 ‘특허정정’ 나선 배경은?…특허 무산 위기서 한숨 돌린 LG화학

게다가 당시 LG화학이 감행한 특허정정은 되레 LG화학 특허의 위기를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LG화학이 특허심판원에 특허정정을 청구한 이유는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이 내린 판정에서 ‘신규성’에 위배 된다는 결론이 나와서다”며 “이는 특허 판정에 있어서 심각한 하자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특허 개념에서 신규성이란 이전에 동일한 발명이 없었다는 점을 뜻한다.

특허청에 따르면 특허가 이전에 있던 발명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무효가 된 사례는 많지만 동일한 발명으로 판정 받아 신규성에 부합하지 못한 사례는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LG화학의 특허가 1, 2심에서 신규성을 지적받은 정황은 3심에서 특허가 취소될 수 있는 중대한 결함에 해당된다는 이야기다.

LG화학이 3심 전 급작스럽게 특허정정에 나선 이유가 여기 있다는 전언이다. 법무법인 화우 이창우 변호사는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의 결론은 한마디로 LG화학의 특허가 다른 특허와 동일한 성질이라 특허로 볼 수 없다는 뜻”이라며 “대법원에서도 승소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청구범위 안에 제안 여러 개를 둬 권리 범위를 줄이는 방식으로 정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리 범위 축소는 특허 명세서에 기재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주목할 사실은 LG화학은 청구범위가 정정된 후에도 특허침해소송(2014년 2월, 서울중앙지법)을 제기했지만 이 역시 패소했다는 점이다. 청구범위가 정정되더라도 특허침해로 볼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이후 LG화학은 특허침해소송 항소를 냈지만 곧 취하하고, 2014년 10월 SK이노베이션과 '부제소 합의'를 체결하기에 이른다. 합의서에 따르면 양사는 향후 10년간 분리막 특허에 대한 모든 소송과 분쟁을 종결하고 대상특허와 관련된 국내·외 쟁송을 금지하기로 약속했다. SK이노베이션도 LG화학에 대한 특허무효 및 정정무효 심결취소소송을 취하했다.

이창우 변호사는 “SK이노베이션은 당시 분리막 특허침해 소송에서 LG화학에 모두 승소하면서 국내에서는 더 이상 법적 위험이 없었다”며 “설령 LG의 정정된 특허가 유효하게 남더라도 패소가 확정됐기 때문에 LG가 다시 소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부제소 합의’ 먼저 어긴 LG화학…미국 ITC에 제기한 소 기각 가능성↑

5년간 잠잠하던 화약고가 미국에서 다시 터졌다. LG화학은 지난 9월 26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과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법인을 ‘특허침해’로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도 법리적 대응에 나섰다. SK이노는 LG화학에 과거 소송전 결과로 양사가 대상 특허로 국내·외에서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으로 보고 서울중앙지법에 소 취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 측은 SK이노베이션과의 합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당시 문서는 한국 특허에 관한 것일 뿐 미국을 포함한 해외 특허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다시 반박에 나선 상태이다. LG화학이 주장하는 바는 ‘속지주의’다. ‘한국특허(KR 310)’와 ‘미국특허(US 517)’는 특허등록 국가가 다르고 권리범위에 차이가 있는 별개의 특허인데 특허독립의 원칙상 각국의 특허는 서로 독립적으로 권리가 취득·유지되고, 각국의 특허 권리 범위도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 25일 SK이노베이션이 자사 홍보 홈페이지에 공개한 LG화학의 리튬이온전지 분리막 관련 특허 원문. [사진=SK이노베이션]
지난 25일 SK이노베이션이 자사 홍보 홈페이지에 공개한 LG화학의 리튬이온전지 분리막 관련 특허 원문. [사진=SK이노베이션]

하지만 한국특허와 미국특허는 청구범위를 제외한 제목, 요약, 발명자, 우선권 주장 번호 등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구범위마저도 한국특허와 미국특허가 각각 16개, 18개인데 이중 16개는 같고 나머지 2개만 미국특허에 추가됐다. LG화학이 제소한 미국특허는 사실상 과거 소송 물의를 빚었던 특허 그대로 옮겨간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더욱이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2차 특허소송’에서는 속지주의 원칙보다도 ‘부제소 합의’가 더 큰 쟁점이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양 사가 5년 전 맺은 부제소 합의에 대상특허와 관련된 국외 쟁송을 금지하기로 명시한 것은 속지주의를 남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다”며 “그런데 LG화학은 합의의 핵심인 '부제소 합의'를 먼저 깨뜨려놓고 그에 따라 야기되는 위법성을 SK이노베이션에 뒤집어씌우는 모양새다. 속지주의를 앞에 내세우는 행태는 특허 논쟁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부제소 합의를 어기고 소를 제기하면 백발백중 각하되는 법리적 토양이다. LG화학은 이런 연유로 국외에서 소를 제기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미국 역시 각하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한 법조계 전문가는 “미국에서 소송을 했기 때문에 한국 법원이 미국 소송을 각하할 수 없고, 취하하라고 이행명령을 하든지, 손해배상을 인정하든지 갈 것이다”며 “한국과 법리적 환경은 다르지만 미국에서도 부제소 합의 부분에 대해서는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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