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학 선생 화성 특별자료전’(2000년)에서 인사말 하는 이종학 선생 [사진=수원시]
‘이종학 선생 화성 특별자료전’(2000년)에서 인사말 하는 이종학 선생 [사진=수원시]

[이뉴스투데이 경인취재본부 김승희 기자] 수원광교박물관 2층 전시실 벽에는 독도의 풍광을 담은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 옆에는 ‘대한민국, 독도입니다’라는 글이 적혀있다. 

몇 발자국 옮기면 ‘사운실’이라는 이름의 전시실이 있다. 사운 이종학 선생(1927~2002)의 호를 따 이름을 지었다.

수원광교박물관 2층에 벽에 걸린 독도사진 [사진=수원시]
수원광교박물관 2층에 벽에 걸린 독도사진 [사진=수원시]

수원군 우정면(현 화성시) 출신인 이종학 선생은 독도가 대한민국 고유영토라는 분명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자료를 수집해 수원시와 독도박물관에 기증했다. 독도박물관 초대 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수원광교박물관은 독도박물관과 함께 공동특별전 ‘독도, 기록하고 기억하다’(2017년), ‘한국인의 얼, 독도에 심다’(2019년 2~7월)를 열어 이종학 선생이 기증한 독도 관련 자료를 시민들에게 소개했다. 

이종학 선생이 수집한 ‘삼국접양지도’ 1785년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했다. 일본을 중심으로 주변 3국 색채를 달리 그렸는데, 조선과 일본 사이 바다 한가운데 큰 섬과 작은 섬(울릉도와 독도)는 조선과 같은 색으로 칠했다. 수원광교박물관 전시. [사진=수원시]
이종학 선생이 수집한 ‘삼국접양지도’ 1785년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했다. 일본을 중심으로 주변 3국 색채를 달리 그렸는데, 조선과 일본 사이 바다 한가운데 큰 섬과 작은 섬(울릉도와 독도)는 조선과 같은 색으로 칠했다. 수원광교박물관 전시. [사진=수원시]

현재 사운실에는 ‘삼국접양지도’ ‘대한지지’ ‘시마네현 고시’ 등 그가 기증한 독도 관련 자료 일부가 전시돼있다.

이종학 선생은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독도 관련 자료를 비롯한 방대한 사료를 평생 수집했다. 

독도의 날(10월 25일)을 맞아 독도를 사랑한 수원 출신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의 삶을 소개한다.

이종학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고서점에서 일하면서 고서(古書)와 가까워졌다. 한국전쟁 후에는 책을 마음껏 읽고 싶어 서울에 고서점을 열었다.

1970년대 초 장서가 서인달(徐仁達, 1902~1990) 선생으로부터 그가 수집한 고서·고문서 등 사료를 인수했는데, 이순신 장군의 사료를 접했다. 

이종학 선생의 인생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난중일기'를 수없이 읽으며 기존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았고, 이순신 장군 연구를 위해 사료를 모으고 정리하면서 우리나라 역사 전체가 일제에 의해 크게 왜곡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마음먹었다.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근거 없는 주장을 일삼는 주변국으로부터 우리 역사와 영토를 지키기 위해 사료 수집과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료로 진실을 밝혀내 그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역사가 대대로 누릴 정신의 옥토라면 지금 제대로 갈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역사를 김맨다’는 의미로 ‘사운(史芸)’이라는 호를 지었다.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대한 관심은 우리 영토와 한일관계로 폭이 넓어졌고, 일제의 불법 국권침탈에 대한 사료, 우리 영토 관련 사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역사 전쟁’의 시작이었다.

일본이 만든 사료에서 일본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근거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일제강점기와 독도 관련 사료를 찾으려 일본 도서관과 고문헌 수집상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국내외에서 수집한 독도 관련 사료는 1997년 우리나라 최초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울릉군)에 기증했다.

이종학 선생이 심혈을 기울인 사업 중 하나가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 제 이름 찾기’였다. 

일제가 지은 ‘수원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으니 본래 이름을 찾자는 것이었다.

화성 축성 200주년이었던 1996년 '화성성역의궤'를 영인(影印)해 보급했다. 해제(解題)와 간행사는 영어로 번역해 첨부하고, 연구기관에 기증해 화성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이종학 선생이 영인 제작한 '화성성역의궤'는 수원화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염원대로 ‘화성’이라는 본래 이름도 되찾았다.

화성 축성 200주년과 화성행궁 복원을 기념해 특별전시회 ‘정조대왕 및 충효 자료전’을 열었고, 전시 유물은 모두 수원시에 기증했다.

그는 수집한 사료를 적절한 곳에 지속해서 기증했다. 독도 관련 사료는 독도박물관에 기증했다.

1996년에는 사운연구소를 열고 평생 수집한 사료를 선별해 귀중한 사료는 책으로 엮어 발간했다.

역사 연구와 ‘역사 바로잡기’에 일생을 바친 그는 2002년 11월, 76세를 일기로 수원에서 눈을 감았다. “한 줌 재가 되더라도 우리 땅 독도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작고 후에도 기증은 계속됐다. 2004년, 유가족이 수원박물관에 고서, 고문서, 관습조사보고서, 사진 엽서, 서화 등 무려 2만여 점의 사료를 기증했다.

수원박물관은 2008년 박물관 내에 ‘사운 이종학사료관’을 만들었고, 2014년부터 수원광교박물관이 사운실을 만들어 그가 기증한 자료를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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