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미국에서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 시상식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리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HBO 5부작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이 미니시리즈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 등 10개 부문을 수상했다. ‘체르노빌’은 올해 에미상에서 미니시리즈 역대 최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화제성에 정점을 찍었다. 

국내에서도 왓챠플레이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 ‘체르노빌’은 시청자들로부터 “5부까지 끊을 수 없다”, “엄청난 몰입감이다”, “이 드라마의 유일한 단점은 실화라는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드라마 ‘체르노빌’과 함께 주목을 받는 것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이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후쿠시마50’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제작돼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한때 야당을 중심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판도라’를 보고 탈원전 정책을 내세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선 출마 당시에도 탈원전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미국과 한국, 일본 모두 원전사고와 관련된 창작 콘텐츠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드라마 '체르노빌'. [사진=왓챠플레이]

◇ ‘체르노빌’ - 관료주의가 불러온 끔찍한 재앙

드라마 ‘체르노빌’은 앞서 언급한대로 1986년 4월 구소련에서 실제로 일어난 원전사고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당시 관료·계급주의적인 소련 사회 질서를 바탕으로 원전사고가 어떻게 일어났으며 어떤 피해를 줬는지 담담하지만 사실적으로 보여줘 시청자들에게 ‘꿈도 희망도 없는 공포’를 선사했다. 

당시 미국과 냉전 체제에 있던 소련은 원자력 과학기술을 증명하기 위한 선전의 목적으로 우주산업과 함께 원자력산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원전 제어기술에 대한 검사결과를 제출하기 위해 무리하게 원전을 정지하고 제어봉을 삽입하면서 폭발로 이어졌다. 

당시 소련의 무기 화학자이자 방사능 연구 권위자였던 발레리 레가소프 교수는 체르노빌 원전에 구조적 결함과 무리한 제어가 문제였음을 파악하고 이를 공개하려 했지만 소련 비밀경찰(KGB)의 통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드라마는 원전사고와 함께 일어날 수 있는 부수적인 피해와 그에 따른 재앙을 순차적으로 언급하면서 극적인 재미도 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고 첫날 화재 진압을 위해 뿌린 소화수와 지하로 스며든 원전 냉각수가 고인 상태에서 수천도의 고열로 폭발을 일으킬 경우 대규모 폭발로 이어져 주변 원자로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 

드라마에서는 이에 대해 ‘수습이고 뭐고 할 수 없는 지구적인 재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야말로 유럽의 절반을 날릴 수도 있는 사고다. 이를 막기 위해 원전 펌프기사 3명이 자원해 현장으로 투입했으며 성공적으로 밸브를 잠그고 사고를 막았다. 한때 이들이 모두 피폭돼 사망했다는 소식도 돌았지만 최연장자였던 바라노프는 2005년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나머지 2명은 현재까지 살아있다. 

‘체르노빌’은 이같은 사고의 연속과 함께 KGB와 레가소프 교수, 올뮤크 박사의 추적을 보여주며 극적 재미도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재미있지만 재미로 볼 드라마는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후쿠시마50'. [사진=아시안위키]

◇ ‘후쿠시마50’ - ‘아베 정부 선전영화’가 될 것인가

‘후쿠시마50’은 공개가 되기도 전부터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 영화가 아베 정부의 선전영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후쿠시마50’은 동일본 대지진 직후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당시 끝까지 남아서 사고를 수습한 원전 직원 50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제 원전사고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만큼 ‘체르노빌’과 비교될 여지도 있다.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80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사고 직후 도쿄전력 소속 직원 750여명이 도망가고 남아서 사고를 수습한 직원 50명에 대해 붙여진 별칭이 ‘후쿠시마50’이다. 

당시 일본뿐 아니라 미국 등 서양 언론들은 이들에게 ‘후쿠시마50’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영웅’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대부분 도쿄전력 소속 정규직 직원이 아닌 일당 10만원 정도 받는 비정규직 직원들이었으며 의지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닌 억지로 수행했다는 주장이다. 

이들 중 여러 명이 방사능 피폭과 화상으로 사망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도 피폭으로 고통받고 있다. 무엇보다 사고를 완벽하게 수습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예고편 영상만 봐도 50인의 노동자에 대해 ‘영웅’으로 미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일부 네티즌들은 “후쿠시마50의 영웅적인 희생으로 방사능 유출을 막았기 때문에 현재 후쿠시마는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영화 '판도라', [사진=NEW]

◇ ‘판도라’ - 방사능 재앙 속 드러나는 인간의 무력함

박정우 감독의 2016년작 ‘판도라’는 세 작품들 중 유일하게 가상의 사고를 기반으로 한 픽션이다. 박정우 감독은 ‘연가시’라는 흥미로운 재난영화를 만든 바 있으며 김남길과 정진영, 김영애 등 명품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판도라’는 가상의 원전인 ‘한별 1호기’와 그 주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마을은 대부분 원전 노동자로 원전 덕분에 지역경제에 활력을 얻고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원전이 폭발하고 사고수습에 난항을 겪는다. 여기에 관료들의 이기적인 모습까지 어우러지면서 영화는 사상 최악의 재난을 그려낸다. 

‘판도라’의 이야기를 이끄는 사람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발전소 직원 재혁(김남길)을 중심으로 여자친구 연주(김주현)와 어머니 석여사(김영애), 발전소 동료 평섭(정진영), 길섭(김대명) 등이 이야기의 핵심인물이다. 서울에서 상황을 지휘하는 대통령 역할에 김명민이 특별출연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판도라’가 가상의 원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경남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 마을이 있다는 점에서 고리원전과 그 주변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이 영화는 “우리에게도 원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강하게 띄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 보수야당에서는 ‘상상력에 기댄 판타지’라며 원전 이슈와 무관함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원전의 경우 4중 안전장치를 구성하게 진도 9.0 지진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가 돼있어 안전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의 사례에서처럼 사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방심하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언제고 긴장하고 주의해야 한다. 

드라마 ‘체르노빌’과 영화 ‘판도라’의 공통점은 도저히 꿈도 희망도 없는 대재앙이라는 점이다. 이는 니콜라스 메이어의 1983년작 영화 ‘그날 이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날 이후’는 원전사고가 아닌 핵폭발에 대한 영화로 영화사상 최초로 핵폭발을 묘사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핵폭발이건 원전사고건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인 것은 마찬가지다. 원자력발전소는 편리하고 유용한 에너지원이긴 하지만 그만큼 엄청난 위험도 따른다. 때문에 방심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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