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유제원 기자] 국내 경제의 시계(視界)가 점차 나빠지고 있다. 대내외 위기감 고조에 일각에선 'D(디플레이션)의 공포'마저 거론된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다음 달에 한 차례 더 인하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에서다.
가장 큰 위험요소로 꼽히는 것은 미중 무역분쟁이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이자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인 두 나라의 난타전은 그 자체로 악영향이다. 뿐만 아니라 무역·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간접적인 피해도 만만치 않다.
미중 양국이 다음달 초 워싱턴DC에서 협상을 재개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동안 결렬과 재개를 반복해 온 협상이 단기간에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한일 갈등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수출심사 간소화 우대국)'에서 제외하고, 우리나라는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시키는 등 대립각은 오히려 날카로워지고 있다.
'홍콩 사태'의 빌미가 됐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은 공식 철회됐지만, 홍콩 내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지면서 불안한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홍콩 시위와 무역분쟁 모두 단시간에 해결될 게 아니다"며 "홍콩 시위대는 직선제까지 요구했던 만큼 송환법 철회 외에 더 얻어내려 할 것이고, 긴장감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는 3개월 연기가 추진되지만, 역시 혼란이 불가피하다. 아르헨티나의 국가신용등급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 수준으로 강등되는 등 신흥시장도 위태롭다.
이처럼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세계 경제의 충격파는 우리나라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한국은행은 대외 위험이 커지면서 올해 2%대 성장률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경제에 성장률 달성을 어렵게 하는 여러 가지 대외 리스크가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미중 분쟁에 더해) 브렉시트를 둘러싼 움직임, 일부 유로존 국가에서의 포퓰리즘 정책, 일부 신흥국의 금융위기 등이 동시다발로 작용하다 보니 소위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부쩍 늘어나는 게 작금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에선 이미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올해 성장률 목표치(2.4∼2.5%)는 물론 한은의 전망치(2.2%)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1분기 성장률 -0.4%, 2분기 1.0%라는 상반기 성적표만 놓고 추산해도 그렇다는 것이다.
먹구름은 밖에서만 몰려드는 게 아니다. 국내적으로 투자·생산·소비가 부진한 데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고갈되고 활력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통계 작성 이래 처음 마이너스(-0.04%)를 기록했다. 경제의 전반적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3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가 '저성장·저물가'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게 됐다. 'R의 공포'를 넘어 디플레이션(Deflation: 가격의 전반적 하락)을 목전에 뒀다는 이른바 'D의 공포'가 거론된다.
결국 이같은 대내외 악재를 돌파하는 수단 중 하나로 한은의 금리 인하는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시기는 다음번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10월 16일이 유력시된다.
한은은 지난 7월 시장의 예상보다 한발 앞서 1.75%에서 1.50%로 0.25%포인트(p) 인하했으며, 8월에는 금리를 동결했다. 8월에도 금리를 내리자는 소수의견은 2명이 나왔다.
이르면 10월, 늦어도 11월에는 금리를 0.25%포인트 더 내리는 것은 물론, 0.25%포인트 추가 인하도 가능하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이 경우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인 1.00%로 낮아진다.
다만 이 총재를 비롯한 한은 수뇌부는 최근의 마이너스 물가가 일시적 현상이라면서 디플레 우려를 일축한 데다, '실효하한(금리를 더 내려도 효과가 없는 한계선)'과 가계부채 문제를 여러 차례 언급하는 등 여전히 매파적(금융긴축 선호)인 성향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미국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완화적인 정책을 펴면 실물경제 안정심리가 살아나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도 한 달 정도 미뤄질 수 있다"며 "금리가 1.0%까지 낮아질 가능성은 줄어든 느낌"이라고 했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