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민연금공단의 고민이 깊어졌다. 오른쪽은 김성주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일본 기업에 대한 주식 투자가 반일 감정의 시험대에 올랐다. 오른쪽은 김성주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민연금공단의 고민이 깊어졌다.

9일 한국이 화이트국(안보 우방국) 리스트에서 제외되면서 그간 미쓰비씨 등 75개 일본 전범 기업에 1조2000억원대의 투자를 단행해온 국민연금에 각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 등은 투자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관련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당장의 반일 감정에 의존해 법률로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도 우선 법률로서의 제한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공식화한 지난 2일부터 이어지는 폭락장에서 국내 증시의 유일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국민연금은 코스피 시장에 1조4500억원 가량을 투입해 같은 기간 외국인 순매도액이 1조4100억원을 웃돈다.

국민연금이 목표하는 올해 국내 주식 투자비중은 18%다. 여기에 더해 5% 범위 내에서 목표 비중을 초과할 수 있어 폭락장이 이어질 경우 약 55조원을 더 쏟아부을 수 여력이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아진 증시에 오직 애국에 호소해 자금을 추가 투입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우선 국민연금이 국내외 주식 투자는 기금운용위원회가 부여하는 수익률 평가 기준(벤치마크 지수)에 따른 것이다. 미쓰비씨 등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 금액이 상당한 이유도 이런 벤치마크 지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투자가 단행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즉 법률을 바꿔서 투자를 막을 수단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선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 수탁 책임 원칙)에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지침을 넣으면 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이는 번지수부터 틀린 주장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장 국민연금 이사장부터 업무 분장을 혼돈하는 모습이다. 김성주 이사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위원회에서 일본 전범기업 배제 안건을 토론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 국민연금 상급기관인 복건복지부도 "책임투자분과위원회의 추가 논의와 관련 전문가의 의견 수렴 등 과정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지만, 수탁자책임위원회 책임투자분과위원회에서 나온 의견은 실무적으로 구속력이 없다. 

현재 국내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은 금융위원회로부터 위탁받아 독점 자문 용역을 수행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보편적인 운용 지침으로 알려진 스튜어드십 코드를 당장의 반일감정에 의존해 변경할 경우 좋지 못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국의 특수상황에 대한 고려를 스튜어드십코드 원칙으로 삼게 되면 글로벌 스탠다드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며 "기업투자에 있어서 도덕적·자의적 판단은 배제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최근 스튜어드십코드의 주요 기준이 되는 환경·사회·거버넌스(ESG)란 재무제표상의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도덕적·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는 문제가 있어 글로벌 보편성의 원칙이 요구된다. 이에 해외 연기금들의 투자 제한 기준도 전쟁범죄나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에 한정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네덜란드(APG)는 무기제조, 대인지뢰, 화학 및 생물무기 생산기업, 사회적 책임 관련 규약인 유엔 글로벌콤팩트 등에 위배되는 기업 투자를 제한한다. 노르웨이 연금 (NBIM) 역시 중대한 인권침해(아동·강제노동, 자유박탈 등) 여부, 전쟁이나 분쟁상황에서 개인 권리 침해, 기후변화, 윤리적 규범 위배 여부 등에 대한 검토를 거칠뿐 과거를 문제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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