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

[이뉴스투데이 유준상 기자] 원자력 발전소는 지난 60년간 한국 산업계를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업용 원전을 가동한 이후 전기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산업화의 동력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동시에 한국은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 자립화와 건설·운영 노하우 축적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기술력을 확보하며 원전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시행하면서 원전 산업은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여파로 국내 원전 생태계는 물론 원전의 영향력이 뻗친 교육, 수출, 환경, 전력수급, 에너지믹스 등에 모조리 빨간불이 켜졌다. 본지는 위기에 빠진 원전 생태계를 짚어보는 시리즈를 준비해봤다.

- 편집자 주

영국 우선협상자 지위 상실, UAE 원전 짓고 하청 전락, 사우디 수주 빨간불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한국의 원전 수출 경쟁력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가장 먼저 이상 징후가 감지된 원전은 영국 무어사이드이다. 도시바는 2017년 12월 무어사이드 원전 자회사 ‘뉴젠’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전력공사를 선정했지만 지난해 8월 돌연히 지위를 해지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도시바는 한전의 지위를 박탈한 이후 캐나다 원전기업 브룩필드, 중국 국영 원전기업 중국광핵집단(CGN)에 뉴젠 매각을 타진했다. 타진이 불발되자 뉴젠을 청산했지만 이후에 한전에게는 다시 협상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국이 첫 원전 수주에 성공했던 아랍에미리트(UAE)에서도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은 2009년 12월 190억 달러 규모 UAE 바라카원전을 단독 수주했다. 지난해 1호기를 완공하고, 현재 건설 중인 2, 3, 4호기는 준공률 90%를 넘긴 상태다. 

원전 건설 발주 국가는 통상적으로 수주 국가에 운영 및 유지 관리도 맡긴다. 원전은 설계수명이 평균 60년인 만큼 수주 국가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정부도 한국이 자체 기술로 만든 바라카원전과 관련해 ‘독점운영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신해왔다.

하지만 한국이 탈원전을 선택한 후 ‘상식’이 깨졌다. UAE는 지난해 11월 장기서비스계약(LTSA)을 한국의 경쟁사인 프랑스전력공사(EDF)에 넘겼다. 이어 올해 6월에는 한국과 장기정비계약(LTMA)가 아닌 LTMSA 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과 규모를 보면 LTMA는 10~15년, 2조~3조원인데 비해 LTMSA는 5년, 수천억원대에 불과하다. 일괄 정비계약이 아닌 일종의 하도급 용역업체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UAE는 이번에 체결한 LTMSA를 통째로 한국에 주지 않고 미국과 영국 등 여럿의 정비 사업자와도 맺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훈 KAIST 교수는 “UAE와 원전 동반자였던 한국이 이제는 용역업체로 전락하게 된 것”이라며 “UAE가 한국에 단독계약을 주지 않은 것은 한국 탈원전 정책으로 열악해진 원전부품 생태계에 대비한 위험관리 성격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탈원전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정부가 공들이고 있는 다른 국가의 건설 계약을 따내는 데도 연쇄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문 대통령과 무함마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의 정상회담에서 원전 수출에 대한 구체적 협의는 진전되지 않았음이 발견된다. 한전은 사우디 원전 예비사업자로 선정된바 있다.

정상회담에 공동발표문에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최초의 상용원전 사업 입찰에 한국이 계속 참여하는 일을 환영했다”는 원론적 이야기만 포함됐을 뿐 원전 수주와 관련된 구체적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지난 2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의 한국 방문 당시 “원전 협력과 관련해 100년을 바라보고 같이 가야 한다”고 했던 점과 대조된다.

이를 두고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의 원전 공급망과 인력 체계 부실화를 우려해 다른 원전 건설의 예비사업자로 선정된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를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해상 원전 '아카데믹 로모노소프'. 러시아가 북극해 지역에 전기·난방 공급을 목적으로 추진해온 첫 해상원전의 가동 준비를 마쳤다.
해상 원전 '아카데믹 로모노소프'. 러시아가 북극해 지역에 전기·난방 공급을 목적으로 추진해온 첫 해상원전의 가동 준비를 마쳤다.

한국 국제무대서 외면 받는 사이…원전 수출 보폭 키우는 러‧중‧일 3강(强)

한국이 탈(脫)원전으로 그동안 축척해온 원전 수출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사이 한반도 주변 강국인 러시아와 중국, 일본은 원전 수출을 향한 보폭을 더욱 넓히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약 200억 위안(3조4000억원) 규모 원전 건설 사업에 공조했다.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인 로사톰(ROSATOM)은 최근 중국 랴오닝성에 쉬다바오(Xudapu) 원전 3·4호기 건설계약을 체결했다. 로사톰은 지난 3월 중국 톈완(Tianwan) 7·8호기 원전 건설도 수주하기도 했다. 4기 원전에는 러시아제 신형 원자로 VVER-1200가 탑재될 예정이며 사업 규모는 총 200억 위안에 달한다.

로사톰은 중국·인도는 물론 원전 불모지인 중동·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로사톰이 이같이 원전 수출 보폭을 넓히는 것은 러시아가 원전 수출국과 에너지와 안보, 나아가 외교 협력을 강화하려는 장기적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로 원전산업이 하향길로 접어들면서 원전 수출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일본 정부는 세계 원전 시장에 강자로 부상한 중국,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다시 원전 신기술 개발과 원전 수출에 나서야 한다고 시각을 바꿨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경제산업성·문부과학성 등 부처와 원전 관련 산·학 관계자들이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관계부처 합동회의’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원전 신·증설이 원활하지 않아 원전산업이 쇠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또한 최근 일본 내각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17년 3%인 원전 발전량 비율을 2030년까지 20~22%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에너지 정책 보고서를 채택했다.

원자력학회는 “한국은 탈원전 선언으로 5년, 10년 뒤 원자력 생태계가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사업 취소로 주기기, 보조기기, 시공 분야 등 2000개에 달하는 유관 업체의 공급망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전 정비를 담당하는 한전KPS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2000명이 넘는 국내 원전 사업 종사자가 2030년이면 1462명으로 줄어든다. 국내 원전 기술과 인력, 부품이 유지돼야 지속적인 수출이 가능하다”고 권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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