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사진=메가박스 중앙 플러스엠]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어떤 영화들은 개봉하기 가장 적절한 시기가 있다. 유관순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면 3월 1일에 맞춰서 개봉해야 하고 해양 액션영화는 여름에 맞춰서 개봉하는 것이 좋다. 당연히 예수에 대한 이야기나 산타 클로스가 나오는 영화라면 성탄절에 맞추는 것이 좋다. 

영화 개봉에 이런 공식은 무조건 지킬 필요는 없다. 특히 요즘처럼 극장가가 뜨겁고 경쟁이 치열한 시기라면 영화는 ‘가장 적절한 날’을 골라 앞뒤 안 가리고 개봉해야 한다. 

‘나랏말싸미’의 개봉시기도 그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영화라면 당연히 10월 9일 한글날에 맞춰 개봉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생충’의 광풍이 휩쓸고 가고 ‘알라딘’의 역주행과 ‘스파이더맨’의 질주가 이어지는 여름 시장의 한 가운데서 개봉한다. 그만큼 영화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당연히 경쟁력은 충분해 보인다. ‘기생충’에 바로 뒤를 이은 송강호의 영화인데다 박해일, 전미선 등 배우진들도 화려하다.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송강호)이 한글을 창제하기 위해 스님 신미(박해일)와 협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뒷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극적 재미와 애국심을 자극한 마케팅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글창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이다. 한자 중심의 언어를 사용하던 조선에서 백성들에게 널리 지식을 전파할 수 있도록 28자의 쉽고 간단한 언어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천문학과 역법을 연구하고 날씨와 시간을 측정하고 예측할 수 있게 한 것 역시 많은 업적들 중 하나다. 

자격루. [사진=위키피디아]

세종대왕은 이순지와 이천, 장영실에게 명해 대간의와 소간의, 혼천의 등 천문 관측 기구를 만들었으며 해시계인 자격루와 양부일구 등 시계도 만들었다. 또 강수량을 측정할 수 있는 측우기 역시 유명한 업적 중 하나다. 

세종 26년에 이순지와 정인지가 편찬한 역법서인 칠정산 내편과 외편은 오차가 1년에 -1초로 140년 뒤에 등장한 그레고리력의 오차가 1년에 +26초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칠정산이 나올 당시에 쓰이던 율리우스력은 오차가 1년에 무려 674초였다. 

또 금속활자를 개량해 경자자를 만들기도 했다. 경자자는 접착성이 떨어져 조립이 불편했던 이전 금속활자를 개편한 것으로 대나무를 이용해 조립하기 때문에 더 단단히 고정될 수 있다. 

세종대왕이 과학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유능한 신하들이 있었던 것도 크지만 본인이 과학과 수학에 관심이 컸던 탓도 있다. 

‘세종실록’에서 12년 10월 23일에 보면 세종대왕은 중국의 옛 수학서적인 ‘계몽산’을 보며 수학공부를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때 세종의 수학 과외선생님 역할을 하던 사람이 정인지다. 정인지는 역법서를 포함해 세종의 과학 업적 중 수학과 계산을 담당한 인물이다. 

이러한 세종대왕의 업적을 볼 수 있는 곳은 많다. 과거 초등학교(혹은 초등학교) 화단 한 쪽에는 양부일구와 측우기 등의 모형이 세워진 곳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 무관하게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에 위치한 세종대왕기념관이나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영릉)에 가면 ‘좀 더 잘 만든’ 세종대왕의 과학적 업적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영화 ‘나랏말싸미’에서는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면모가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보여진 히스테릭하고 예민한 세종대왕(한석규)과는 다른 모습이 될 듯 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한글이 만들어지까지 중국의 위협과 여기에 동조한 반대파 대신들의 압박이 주를 이뤘다. 

‘나랏말싸미’에서는 한글을 만들어야 한다는 세종의 절박함이 드러나있다. 어떤 경우가 됐건 한글은 참 지독한 진통을 겪고서 태어났다. 

세종대왕의 모든 과학적 업적들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중국의 과학기술에 오류를 부정하고 우리만의 시간과 역법, 천체 관측, 날씨 계산을 만드는 것은 큰 부담이 따른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농사를 짓는 백성들을 위해 강행한 것이다. 

세종대왕의 과학적 업적은 그 기술력 자체만으로도 위대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의지 또한 위대하다. 그랬기에 10월 9일이 아닌 다른 날에도 세종대왕의 이야기는 충분히 만나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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