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안중열 기자] “쉬는데 자꾸 전화하지 마세요.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는 그만 하시죠?”

술자리 강권, 부당 업무 지시, 불합리한 인사조치 등 직장 내에서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는 이른바 ‘갑질’을 제한하기 위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 자정 본격 시행되면서 나온 을들의 대표적인 항변이다. 과거 관행적으로 오갔던 직장인 사이의 말들, 행동들이 바로 불법이 되고 처벌받을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은, 극심한 취업난에도 회사를 가기 싫게 만드는 대표적 이유다. 어떤 게 직장내 괴롭힘이 될 수 있는지, 직장 내 을들의 고통과 하소연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응하는 사측, 다시 말해 경영자의 입장도 중요한 포인트다.

2018년 11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위한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 전격 시행되면서 직장 상사뿐만 아니라 사주(경영자)까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언론사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업무 시간에 일정치 않은 영업직이나 홍보직까지 해당 법안에 ‘나도 저촉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퇴근 후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카페, 블로그 등을 통해 끊임없이 울렸던 상사의 메신저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답변을 해야 했던 직장인들에겐 불합리한 상황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다.

평소 내키지 않는 회식자리에 늦게 참석했다는 이유로 강요됐던 석 잔의 술, 후배이자 남자이니까 날라야 했던 물통, 여자였기에 전담해야 했던 커피 심부름과 설거지 등의 불합리한 관행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특히 부당함을 알면서도 특정 직종, 예외적인 상사의 지시 등 이유로 참아왔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법적 대응도 가능해졌다.

관련법에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저해하면 안 된다’고 명시됐다.

물론, 얼마나 해당법의 실효성이 발휘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번 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가 회사에 신고하면 회사 차원의 조사를 통해 가해자와의 합의나 분리, 가해자와 별도로 징계 등 해결이 되도록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괴롭힘 당사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 권한이 집중된 사용자가 공정하게 판단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나 징계수위 결정 등 적절한 조치를 이행할지는 알 수가 없다.

사주인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한 노동자에 불이익한 처우를 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럼에도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사용자는 한가한데 직장 상사들과 직원들 사이에서만 논란이 되고 있다. 직장 상사들만 전전긍긍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사주인 사용자의 도덕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김명진씨는 “그동안 했던 언행이 부하 직원들 혹은 동기들한테 불편을 끼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불필요한 조심스러움이 어느 쪽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조직 문화란 게 특정 상황에 맞게 제한될 수 없는 게 아닌가”라고 항변한다.

다만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에겐 어색하기만 하다.

힘겹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조민수씨는 “이게 가능한가”라고 되물으며 “솔직히 한 두 번은 그리 할 수 있지만 결국 낙인이 찍혀 직장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대학 졸업 후 2년 만엔 취업했다는 최은진씨는 “직장 내 괴롭힘? 그런 괴롭힘이라도 받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자금 법에 대해 환영할 만한 입장도 아니다”라며 “지금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오래 다녀 실업자 시절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처벌보다도 직장 문화 개선이라는 법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법의 취지가 꼭 처벌을 우선시하기보다는, 이와 같은 사항에 있었을 때 사용자의 책임을 촉구하는 예방을 담보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상사의 지시라면, 이유를 막론하고 따라야 했던 악습을 철폐하겠다고 나온 ‘괴롭힘 금지법’은 상호 존중의 문화 속에 지키겠다는 구성원들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사주로 대표되는 사용자와 근로자로 대표되는 직원이 다를 수 없다. 모든 책임은 사주가 질 수밖에 없다고 해도, 이 법을 악용하는 직원들의 행태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해당법을 이해 못하는 사주가 ‘강 건너 불 구경을 한다’는 지적과 함께 직원이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혼선을 풀기 위해 답은 간단하다.

업무시간 외란 표현 자체가 8시간 근무 이후나 주말, 혹은 법정 공휴일에 개인적 시간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만큼, 해당 시간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뒷따르면 된다.

하지만 경영실적이 악화되는 상황이나 앞으로의 경기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당분간 경영자들이 돈보따리를 업무상황에 맞게 풀긴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선 자신의 직무를 책임지지 못하는 직장인이 회사를 상대로 섣불리 법적 대응을 할 경우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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