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윤진웅 기자] 한참 사춘기를 겪던 17살,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경기도 소재 반지하로 이사를 했다. 빨간 벽돌로 지은 다가구주택이었다. 대문을 열고 모퉁이를 돌아들어 가면 구석에 현관문이 있었다.

워낙 깊숙이 자리한 탓에 창문을 열면 길가는커녕 콘크리트 담장만 보였다.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벌이던 쥐와의 사투였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쟤넨 그래도 좋은데 사네. 창문 열면 길도 보이고 환기도 되니까”라며 우스개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열악했다. 그곳에서 약 2년을 지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그런 곳에서 살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철저하게 감췄다. 집에 놀러 오겠다는 친구에게는 “어머니가 집에 누구 데려오는 걸 싫어하신다”고 핑계 댔다. 

왜냐면 부끄러웠다. 상상만 해도 수치심이 들었고 발가벗은 기분이 느껴졌다. 당시 낮은 자존감 때문에 더 예민했을 수도 있지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것 같다.

이처럼 지극히 사적인 과거를 들추는 이유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시재생 구상 방안 때문이다.

최근 콜롬비아의 고지대·빈민가의 도시재생 현장을 둘러본 박 시장은 서울 산동네에 모노레일과 에스컬레이터 등의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산동네에 엘리베이터 등이 놓이고 벽화 같은 것이 주민들의 주도로 만들어지면 얼마든지 관광마을로 등장할 수 있다”며 “도시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배운 것 같다”고 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달동네를 관광마을로 만들겠다니. 수많은 관광객에 둘러싸이게 될 원주민들은 무슨 죄인가. 달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관광의 대상이 되는 꼴이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가 불특정 다수에게 여과 없이 노출된다.

지난해 박 시장은 강북구의 한 옥탑방에서 ‘한 달 살이’를 시작했다. 그는 “책상머리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절박한 시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부족”이라며 현장에 뛰어 들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박 시장의 행보를 보여주기식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박 시장이 옥탑방에서 중학생 5명과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보고는 내심 기대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가 진심으로 서민의 삶을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옥탑방 한 달 살이의 결과물이 달동네 관광지화가 될 전망이다. 자칭 서민시장인 그가 서민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다. 수치심을 자극해 동기 부여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번 계획은 콜롬비아에 두고 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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