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덕 수석연구위원이 원전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뉴스투데이 이상헌‧유준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을 하겠다’고 선언한 지 2년이 흘렀다. 

국가 백년대계 에너지정책의 키 방향을 돌린 그 '무거운 결정'에 한국은 숙고할 겨를 없이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드는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다. 

원전 종사 2000여 곳 중소기업체는 일순간에 일자리를 잃었고, 주기기를 공급한 두산중공업은 한 달 월급 주고, 두 달 쉬게 하는 순환휴직을 하고 있다. 원자력전공 지망학생 비중도 나날이 감소하며 학과의 문을 닫게 생겼다. 국내 원전생태계가 함몰되자 대외적으로 원전 수출 경쟁력도 상실해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한국이 장기정비계약(LTMA) 단독 수주를 따낼 것이란 예측이 빗나간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고 원자력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명예를 얻은 것도 아니다. 원전을 희생시키면서 등판한 재생에너지는 경제성, 안보, 환경 세 마리 토끼를 모루 놓치고 있는 모양새다. “건강한 에너지, 안전한 에너지, 깨끗한 에너지 시대로 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야심찬 선언은 임기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풍랑을 맞았다.

원전을 배제한 에너지 믹스가 과연 국가 백년대계를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물음표'가 찍힌다. 국민들과 정치권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탈원전 추진 2년이 지난 시점, 국가 60년을 견인해온 원전을 재조명하고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할 때라는 주문이 커지고 있다.

[인터뷰] 박상덕 서울대 전력연구소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

본지는 지난 3일 원자력계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전력연구소 원자력정책센터의 박상덕 수석연구위원을 찾아갔다.

본지는 지난 3일 원자력계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전력연구소 원자력정책센터의 박상덕 수석연구위원을 찾아갔다. 정부 탈원전 정책,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핵폐기물 처리, 원전의 위험성 등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질문을 던졌다. 박상덕 수석은 “원전과 방사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고, 오해를 풀어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 논거없이 탈원전 이념에 사로잡혀 폭주하는 정부 에너지정책을 본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첫 단추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 수석과의 일문일답.

Q.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정책을 편 지난 2년을 평가한다면

“국내적으로는 탈원전 이후 월성1호기 조기 정지, 인허가기관의 업무 해태 등으로 원전 이용률이 감소했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3차 에너지기본계획 등 에너지계획은 합리성을 상실했고, 세계적 관심사인 미세먼지, 온실가스에 대한 대응책도 전무하다. 국외적으로는 영국원전 우선협상자 지위를 상실하고, UAE 정비계약이 1/3 토막이 났다. 사우디 원전 수주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원자력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중소기업을 필두로 한 원자력산업계는 고사 위기, 원자력 관련 학과는 폐쇄 위기,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은 경영 악화에 직면했다. 4세대 원자로 등 미래 개발에 대한 연구개발(R&D)도 불투명해졌다.”

Q. 미세먼지와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앞당기면서 민감한 국제적 문제로 부상했다. 정부의 탈원전정책이 온난화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기후변화는 이 시대 가장 민감한 화두이자 위험요소다. 이에 세계 각국이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목표 내놓고 있는데 한국은 원자력은 나쁘다는 편견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에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새다. 탈원전‧탈석탄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액화천연가스(LNG) 사용량만 늘었다. 2016년에서 2018년을 지나며 LNG 단가는 45%, 도입량은 29%, 도입액은 87% 각각 증가하며 추가금액이 총 106억불로 늘어났다. 하지만 LNG는 원자력보다 훌륭한 대체에너지가 될 수 없다. LNG는 원자력보다 발전단가가 많게는 수 배 비쌀뿐더러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물질을 내뿜는다. 전세계에 탈원전‧탈석탄을 동시 추진해 성공한 나라는 없다.”

박 수석이 기자의 원전 현안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Q. 원전이 에너지수급과 기후변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면 정부에 요청하면 될 일이다. 시도해봤는가?

“원전 정책을 펴는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눈과 귀를 닫은 모양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 원자력학회 여론조사, 탈원전반대서명운동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과 소관 지방정부는 꾸준히 원자력을 지지하고 있다. 탈원전반대서명은 40일 만에 33만명, 지금은 50만명을 넘었다. 33만명 서명을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과 함께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청와대는 귀를 막았다.”
“원자력 지성 집단인 원자력학회가 여론조사를 공동으로 하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는데 정부는 숨어버렸다. 문재인 정부는 원자력계의 합리적 요구에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은 전문가들의 치열한 토론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고 비합리적 이념과 정치적 목적에 의해 결정됐기에 절차적 정당성은 물론 에너지정책의 본질인 안보, 경제, 환경을 모두 놓쳤다. 한국이 롤모델로 삼는 독일은 상당히 오랜 기간 치열한 토론 끝에 탈원전을 결정했는데 한국은 이같은 과정이 결여됐다.”

Q. 문재인 정부는 독일을 ‘탈원전 모델’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의 현재에서 한국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고 보여지는데 독일의 현재 에너지 수급 실태는 어떤가

“독일은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35%를 넘어섰음에도 전기료가 급등하고, 온실가스 감축에 실패하면서 독일 내부에서 ‘혼란스럽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유럽 주요국 중 전력요금은 독일이 가장 높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상위권이다. 독일은 1990년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에 40%, 2030년에 55% 각각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했지만 감축 목표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되레 석탄발전량은 2018년에 2000년보다 증가했다.”

Q. 독일이 탈원전을 추진했음에도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하고, 전기료가 폭등한 이유는 무엇인가

“쉽게 말하자면 원자력발전이 감소하면서 그 자리를 대체한 석탄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야기하고 가격도 원전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나아가 재생에너지는 계통연계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가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결정적으로 재생에너지는 간헐성이라는 치명적인 문제 때문에 단독으로는 운영이 불가하다. 이에 백업 발전이 반드시 필요한데 독일은 탈원전으로 인해 사용하지 못하는 원전 대신 LNG로 백업하면서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LNG는 정상운전 할 때보다 피크발전 때에 CO2가 약 5배 더 나온다. 결국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CO2를 줄이지 못한 결과에 직면한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제대로 백업할 수 있는 에너지가 바로 원자력이다.”

Q. 원전이 기후변화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세계적인 추세는 어떠한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탄소배출이 없는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세계 학계, 국제기구 그리고 산업계 모두 동의하는 공통된 인식이다. 지난해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특별보고서를 통해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2050년까지 원전을 현재의 2.5배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5월, 설립 이래 첫 원전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만큼 원전을 중대한 사안으로 바라본 것이다. 보고서는 지난 20년간 재생에너지가 늘어났음에도 청정에너지 비중이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원전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안전성이 확인된 원전의 계속운전을 실행하라’고 제시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도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원전을 늘려야 하고, 인력 유지와 표준화에 기반한 한국의 원전 건설‧기술력을 벤치마킹 하라’는 주장을 폈다. 그런데 한국은 되레 안전성이 검증된 원전을 인허가 기간이 지나기 전에 정지시켰다. 국제적 흐름에 역방향을 타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박 수석은 원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Q. 원전이 발전효율이 높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라는 점은 입증됐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있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원전의 안전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인류가 원전을 소유한 이래, 원전 사고는 세 차례 발생했다.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TMI), 구(舊)소련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와 달리 TMI는 1.2m~1.5m 두께의 격납용기가 있어 사고난 후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다. TMI 사고 직후 카터 대통령이 평상복으로 발전소 주변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 건립된 원전들은 당시보다 안전 기술력이 훨씬 좋아졌을 뿐더러 TMI 교훈을 얻어 모두 격납용기를 설치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원전이 폭발하더라도 방사능은 격납용기 안에 갇혀있게 된다. 현재 국내 건립된 모든 원전은 TMI형 격납용기가 설치됐다.

Q. 더불어 원전 발전 후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걱정하는 시선도 많은데

“사용후핵연료의 가장 큰 걸림돌은 수용성이다. 처분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반원전단체들이 합리성이 결여된 선동으로 국민들의 불안감을 높여 수용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원전 폐기물 관리 기술은 이미 축적‧정립돼 있다. 원자력은 에너지 밀도가 매우 높아 타 에너지원에 비해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폐기물이 매우 적다. 실제로 국내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수명 기간까지 운영했을 때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폐기물은 축구장 3개 크기 폐기장에 다 보관할 수 있다.”
“더구나 사용후핵연료 물질의 95%는 원자로에 들어갔던 그대로 나오고, 5%만 방사능을 띈다. 즉 이를 분리하는 재처리 기술을 적용하면 크기가 1/20로 줄어든다. 사용후핵연료가 영구적으로 남아있다는 주장도 잘못된 상식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가 줄어드는 유한한 물질이다. 반감기가 짧은 물질은 300년에서 500년 후면 자연 상태의 방사능으로 돌아간다.”

Q. 사용후핵연료 폐기장 주변 방사능 수치가 높지 않은가. 또 외부 충격에 의해 균열돼 방사능에 노출될 위험성은 없는지 궁금하다

“잘못된 선입견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지면 위에 두더라도 사용후핵연료로 인해 주변 방사능 수치가 올라가지 않는다. 예를 들면 경주 월성원전의 건식저장시설 주변 방사능 준위(수치)가 서울의 자연방사능 준위보다 작다. 서울은 화강암이 많아 방사능 수치가 높기 때문이다. 자연방사능 수준 이하로 유지해야 용기사용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용기가 얼마만큼 견고한가에 대한 실험을 했다. 대형트럭, 기관차에 연료 용기를 싣고 빠른 속도로 달려 벽에 부딪치는 실험을 수십여 차례 했지만 단 한 차례도 용기가 부서져 방사능이 노출된 사례가 없었다. 이같이 부식과 압력에 장기간 견딜 수 있는 처분용기에 담아 공학적 방벽으로 감싸 지하 500~1000m 깊이의 자연암반에 매립된다. 이미 선진국과 IAEA는 매립 방식이 경제성과 안전성 등 종합적 관점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권고했다. 만에 하나 통이 깨져 방사능이 흘러나와도 진흙층을 30cm 통과하는데 수십만 년이 걸리기 때문에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뉴스 용어설명]
* 4세대 원자로 : 3세대 원자로보다 안전성과 경제성이 훨씬 높고 핵 비확산성은 향상된 차세대 원자로.
* 간헐성 : 기상 조건에 따른 발전량 변동. 태양광‧풍력 발전은 원자력 발전과 달리 간헐성 문제를 안고 있어 에너지저장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 반감기 : 방사성물질의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
* 격납용기 : 최종 방호벽인 원자로 건물의 내면을 둘러싸고 있는 구형 또는 종형의 강철제. 방사선과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방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로 건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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