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을대 음대 작곡과 이신우 교수. 현재 이신우 교수는 세종시 문화정체성 확립을 위해 세종시문화재단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 중인 '여민락교향시'를 작곡 중에 있다.

[이뉴스투데이 세종취재본부 이용준 기자] 세종시문화재단(대표 인병택)이 세종시의 문화정체성 확립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여민락교향시‘의 美 뉴욕 카네기홀 공연이 확정되자 이 곡의 작곡자인 서울대 음대 작곡과 이신우 교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13일 세계 최고의 음악원 중 하나인 영국왕립음악원이, 런던의 듀크스 홀에서 개최한 ‘Conferment of Honours 2019’에서 세계 음악계에 큰 기여를 한 동문에게 수여하는 ARAM(Associate of the Royal Academy of Music)의 영예를 안기도 한 이신우 교수를 만나기 위해 녹음이 짙게 물들고 있는 서울대 캠퍼스를 찾았다.

대학 입학 당시 주변에 독특한 사고와 행동을 하는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과는 달리 특이한 점도 개성도 없었던 자신이 오늘까지 한 길만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끈기와 근성 덕분이었다고 말하는 이신우 교수와 향기 그윽한 찻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5월 영국 왕립음악원이 수여한 ARAM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세계적인 음악원이 인정한 작곡가로 알려졌는데 어린 시절의 모습이 궁금하네요?

“고맙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엔 솜씨 좋으신 외할머니와 함께 재봉틀을 이용해 여러 가지 소품도 꽤 잘 만들곤 했었어요. 무언가를 만들고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고,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 창작을 하는 것에 몰두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나 싶네요.”

그럼 작곡은 언제부터 시작을 하셨고, 지금까지 어떤 과정들을 지내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중학생 때 작곡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작곡에만 매달려 왔어요. 그러면서 큰 어려움 없이 대학 입학과 영국 유학 시절 등 비교적 순탄한 시기를 지내왔고, 다른 사람들보다 나름 커리어의 정점을 젊은 시절에 찍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스물아홉의 나이에 서울대 작곡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있어 혼란을 겪게 됐어요. 1980년대 후반 서울대학에서 공부할 당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논리’와 ‘구조’를 중요한 가치로 추구했던 서유럽 현대음악들이 한국에서도 폭넓게 다루어졌고 영국 유학 시절 역시 어느 정도 이러한 연장선에 있었던 것 같아요. 서유럽 아방가르드의 음악 경향을 추구하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이게 과연 내가 써야 할 진정한 음악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죠. 작곡가로서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일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교수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이런 시기를 지나게 되니 한동안 작품을 쉽게 쓰지 못했어요. 그동안 제가 써 왔던 음악 어법들, 기술들을 모두 버린 후에야 작가로서 진짜 제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용기를 내어 음악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물론 음악이 추구하는 방향이 변했으니 그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들이 필요했고 서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하나씩 스스로 터득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제게 큰 동기부여와 자극이 된 일이 있었는데 바로 서울대학 선배이자 동료였던 故 이강율 교수님이셨어요. 그 당시 암 투병 중이셨던 이강율 교수님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비엔나에서 위촉 받은 작품을 당신을 대신해 써 줄 수 있겠냐고 병상에서 제게 간곡히 부탁하셨어요. 어법이 바뀐 후 한 음을 쓰기도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이강율 선생님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돌파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대학에 부임한 이래로 근 20여년을 작곡과 3,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악분석을 가르쳤는데 이 수업이 저 스스로에게 새로운 기술과 음악어법을 탐구하고 연마할 수 있었던 ‘창작의 실험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신우 교수는 지난 5월 13일 영국왕립음악원으로부터 'ARAM, Associate of the Royal Academy of Music'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럼 그 당시 학생과 요즘 학생들을 비교했을 때 차이점을 느끼시는지요?

“요즘의 학생들과 예전을 꼭 집어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한 동안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지 못했을 때에는 아이들이 근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우리가 공부하던 그 시절과는 전혀 달라요. 그래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요.”

“지금도 아이들의 근성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을 하지만, 그보다 서로 간에 가지고 있는 생각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또 한 가지, 요즘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많은 경험을 하라고 얘기를 하고 그런 것들을 함께 하려고 노력합니다.”

“원래 작곡이란 작업은 본인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양하게 경험해 봐야 진정성이 묻어나는 음악으로 표현이 가능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기법을 활용만 하는 기계적인 활동을 할 수밖에 없어요. 특히, 요즘 학생들은 재능은 뛰어나지만 사교육 시스템에 적응해 온 아이들이라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뭔가를 해나가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해요.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나갈 수 있는 음악적, 인문학적 기반을 닦아주는 게 교수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엔 작품에 관해 얘기를 해 보죠. 근래 소개되고 있는 작품에는 인문학적, 종교적 가치가 중요시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의도적으로 그리 된 것 같지는 않아요. 모든 예술 창작활동이 그렇듯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인간 본연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창작을 시작하면서 책과 그림을 많이 접하게 되고, 내적으로 침잠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러면서 렘브란트, 고흐의 작품들을 자주 감상하면서, 그 작품들 속에서 인간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곤 해요. 그리고 도서관에서 자료 조사와 정리를 하다보면 결국은 인간 본질과 점점 마주하게 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박사과정 때였는데 대편성관현악을 위한 ‘시편 20편’을 작곡하면서 도서관에서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면서 기독교에 자연스레 접근하게 되었고, 인문학적 사고, 종교적인 묵상, 고대 히브리 음악과 역사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음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했던 것 같아요. 물론 이 방법은 한동안 작가로서 정체성을 찾아 헤매던 시기를 지나 나중에서야 비로소 제 작가적 노하우로 자리 잡았지만 실은 이미 20대 중반에 이런 훈련을 모두 했던 거였어요. 보다 성숙하고, 서로 연결되고, 이치를 깨달아 아는 어떤 때가 되어야 함과 이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제가 최근에서야 발견하게 된 귀한 지혜입니다. .”

그러면, 교수님 본인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작품의 세계와 교수님에게 영감을 주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조금 전에도 얘기했듯이 인간의 본질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레 종교에 집중하고 접근하게 되고, 인간 근원에 대한 연구와 통찰, 그리고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중시하게 되더군요. 렘브란트와 고흐, 모란디와 그 외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얻기도 하는데, 요즘처럼 속도를 중시하는 시대에는 참 쉽지 않은 방법이죠. 그러나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접근의 지름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천천히 묵상하고 연구하고 성숙하는 시간을 거쳐야만 진정한 뭔가에 도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현재 이신우 교수가 작곡 중인 '여민락교향시'의 악보 표지(사진 좌측)과 이 곡을 연주하게 될 '세종솔로이스츠'(사진 우측)

이번엔 주제를 바꿔, 세종시가 추진하고 있는 '여민락교향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죠. 어떻게 참여 하게 되셨는지요?

“예전부터 서양음악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고전과 국악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애민정신 그리고 문화적인 업적에 대한 문헌들을 접하게 됐고, 그 이후 세종대왕의 음악적 업적인 여민락을 관심 있게 연구 하던 차에, 주변의 추천을 받아 세종시와 인연을 맺게 됐네요. 개인적으로 좋은 기회를 얻게 돼 기쁘게 생각하고, 또한, 세종솔로이스츠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작용해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어떤 의미를 담은 ‘여민락교향시’가 탄생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현재 작업 중인 여민락 교향시는 15분정도의 단악장으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과 현악합주를 위한 곡입니다.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대편성관현악을 위한 여민락교향곡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습니다.”

“ 이번 ‘여민락교향시’의 작업은 위대한 문화 혁명가로도 얘기할 수 있는 세종대왕의 업적과 품격을 다루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대표적 문화유산인 한글과 세종대왕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하는 것과, 우리 민족정서와 문화의 깊이와 기품이 스며든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 전통의 무게감과 현대의 세련됨을 지닌 ‘여민락교향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데, 지금껏 한 길만 걸어오셨는데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는 지 얘기해 주신다면?

“한마디로 한결같이 자기 길을 걸어간 사람이라 평가를 받고 싶어요.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변함없이 한결같이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던 한 사람의 예술가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주변 지인들은 독특하고 기발한 생각 행동을 하는데 비해, 본인은 지극히 평범한 존재라고 여겼다면서, 자신을 지금까지 지탱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이 가진 끈기와 근성뿐이었다고 얘기하는 이신우 교수.

그런 끈기와 근성이 바탕이 되어 인간과 종교, 역사와 시대상이 투영된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고, 이신우 교수가 추구하는 가치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미 그의 한결같음이 인정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신우 교수는?] 
1999년부터 서울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신우 교수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강석희 사사)를 졸업하고, 영국 왕립음악원(사사 마이클 피니시)에서 디플롬을, 런던대학교와 서섹스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음악대학 현대음악시리즈 ‘STUDIO 2021’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주요 작품으로는 ▲대편성관현악을 위한 ‘시편 20편’(1994-6, 개작 1998) ▲바이올린협주곡 ‘보이지 않는 손’(2000/2002) ▲현악합주를 위한 ‘열린 문’(2004) ▲피아노를 위한 ‘코랄판타지 1-5번’(2007/2009/2013/2019) ▲클라리넷과 현악사중주를 위한 ‘라멘트’(2013/2014) ▲바이올린판타지 ‘라우다테 도미눔’(2006) ▲바이올린소나타 ‘시편소나타’(2011-13) ▲‘시편칸타타’(2015-16), ▲소프라노와 오르간, 오케스트라를 위한 ‘투사 삼손’(2003/2018),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네 개의 탄식의 노래’(2018-19), 가야금과 바이올린, 현악합주를 위한 ‘풍경 II’(2019) 등이 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로얄필하모니협회작곡콩쿨, 뮤지컬타임즈작곡콩쿨, 레너드번스타인국제작곡콩쿨, 가우데아무스 국제작곡콩쿨 및 ISCM세계음악제에서 입선했으며, 국내에선 안익태 작곡상 대상, 한민족창작음악축전 본상, 대한민국 작곡상 우수상, 난파음악상 및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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