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결정에 경제보복 카드로 맞불을 놓고 있다. 아베 정부가 이달 말 치러질 참의원 선거를 대비해 한국을 상대로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 배경을 떠나 우리 경제는 한일 간 정치‧외교적 갈등에서 촉발된 일본의 보복성 수출 제재라는 또 하나의 복병을 만났다.

품목 선정부터 우리에게 데미지를 최대화할 수 있는 고도로 계산된, 계획 하에 이뤄진 조치로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을 엄격히 규제하기로 하면서 우리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이번 3가지 품목이 아니라 일본의 제재가 확대될 가능성이다. 추가 제재가 유력한 실리콘웨이퍼나 이미지센서 등 각종 반도체, 스마트폰 소재와 장비는 대일 수입의존도가 높고, 해당 소재가 없으면 완성품이 제구실을 할 수 없다. 여기에 고급 철강판과 정밀화학연료 등도 안심할 수 없다.

실제 한 일본 언론은 전날 “일본 정부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분야 소재 수출 규제 품목을 보다 확대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소재를 수입해 완성품을 만드는 우리로서는 일본의 추가 제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양국갈등이 장기화 되고, 제재 품목이 확대될수록 우리 산업 타격이 더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선 2일 ‘보복 조처’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국가와 국가의 신뢰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했다”고 설명했지만, 우리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 대비한 발언이라는 분석과 함께 ‘신뢰관계’를 언급하면서 강제징용판결에 대한 후속 조치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일본 다수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해결 방안 모색은커녕 경제 보복으로 대응하는 일본 정부의 행태는 우리 정부나 국민뿐만 아니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지난주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선언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주관한 의장국의 국격에도 맞지 않다.

일본의 정치적 배경을 떠나 일본의 경제보복이 불러온 파장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시급하지만, 우리 정부에게선 정부로서도 딱히 대응책이 보이지 않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사와 다른 한일관계를 분리 대응하는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대응방안 마련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일단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지난달 19일 피해자 구제의 필요성과 일본 측의 요구를 균영 있게 반영했다는 설명과 함께 한일 양국 기업이 기금을 조성해서 위자료를 부담하자는 방안을 일본에 제시했지만 단박에 거절당했는데, 재차 진지한 검토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정부가 밝힌 WTO 제소 방안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WTO 제소 자체가 갖는 의미는 있을 수 있어도, 경제계가 입을 타격을 줄이는 조치로서는 큰 의미가 없는 만큼 일본 정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은 이번 조치가 WTO의 규칙에 맞고, 자유무역과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우리 정부가 WTO의 제소 절차가 최소 1년 6개월 이상 장기간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우려해야 할 판이다. 실제 지난 2013년 미국의 세탁기 반덤핑 관세에 대해 제소해 3년 뒤 승소했지만, 제소 기간 우리는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던 선례를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한일 갈등은 정치적‧외교적으로 촉발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맞대응을 해도 대응자제를 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렇다면 사실상 마비된 한일 간 외교 채널을 복구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그래야 대화를 하고 문제를 해결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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