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바라카원전. [사진=한국전력기술]

[이뉴스투데이 유준상 기자]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한국형 원전(APR-1400)의 정비 계약에서 당초 예상에서 크게 후퇴한 사실상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탈(脫)원전을 선언한 뒤 국내 원전 부품 생태계가 급속히 붕괴한데 따른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란 게 원자력업계의 진단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23일 UAE 아부다비에서 한수원·한전KPS 컨소시엄과 두산중공업이 바라카 원전 운영 업체인 ‘나와(Nawah)’와 장기정비사업계약(LTMSA)과 정비사업계약(MSA)을 각각 체결했다. 바라카 원전 정비계약은 한국이 자체 기술로 만든 APR1400 원전 4기(총 5600㎿)를 유지·보수 및 정비하는 프로젝트다.

UAE 바라카 원전은 한국이 자체 기술로 만든 고유 기술인만큼 한국이 장기정비계약(LTMA)을 단독 수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번 계약에서 LTMA 대신 LTMSA으로 대체되며 예측은 빗나갔다. 바라카에 한국형 원전을 짓는 지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괄 정비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일종의 하도급(용역)을 수주하게 됐다는 의미다.

한 원전부품 종사자는 “이번 계약은 나와가 바라카 원전 정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국 업체들은 나와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마다 호출하면 정비 인력을 파견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계약 기간도 15년이 아닌 5년으로 축소됐고, 계약 금액도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던 총액 지급 개념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 때마다 건당 용역비를 받는 형태다. 원자력업계에서는 한국이 UAE와 원전 동반자 관계였는데 이제 용역업체로 격하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나와 측은 “우리가 바라카 원전의 정비작업을 주도하며 팀코리아는 개별 업무지시서에 따르게 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한국만의 단독 수주도 아니었다. 나와는 이번에 한국과 체결한 LTMSA을 미국과 영국 등 여럿의 정비 사업자와도 맺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액이 당초 예상 3조원보다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수원은 당초 바라카 원전 사업으로 건설 분야 14만개 등 약 22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수출효과 21조원, 파생효과 70조원 규모로 내다봤었다.

UAE가 예상을 깨고 한국에 단독‧일괄 정비 계약권을 주지 않은 것은 한국의 탈원전에 대비한 위험관리 성격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UAE 원전 운영업체인 나와가 팀코리아에 단독 정비 계약을 맺지 않은 건 정부가 2017년부터 탈원전 정책을 본격화한 뒤 열악해진 국내 원전부품 생태계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며 ”UAE 측에선 위험 관리 차원에서 자체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복수의 정비 사업자를 두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UAE 정비계약을 단독 수주하지 못한 건 탈원전 정책과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달 24일 브리핑에서 “결국 우리가 UAE 원전의 정비를 주도적으로 담당하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단독 수주하지 못한 건 UAE의 정책 변화일 뿐 한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전업계에선 탈원전 정책의 여파가 분명히 있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원전 공급망과 인력 체계 부실화를 우려한 UAE가 정비서비스 공급자를 다변화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은 탈원전 선언으로 5년, 10년 뒤 원자력 생태계가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유능한 기술자가 몇 명이나 남아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

최근 한국원자력학회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사업 취소로 주기기, 보조기기, 시공 분야 등 2000개에 달하는 유관 업체의 공급망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전 정비를 담당하는 한전KPS는 국회 제출 자료에서 현재 2000명이 넘는 국내 원전 사업 종사자가 2030년이면 1462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한바 있다. 학회는 “국내 원전 기술과 인력, 부품이 유지돼야 지속적인 수출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학 원자력과 학생들은 미래 불안 때문에 원자력 전공을 포기하거나 복수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학회 조사에 의하면 학생들의 전공 만족도는 70.5%로 매우 높지만 원자력 채용시장이 축소될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실제로 2017년에서 2018년 사이 서울대는 51.7%에서 32.2%로, 한양대가 52.9%에서 34.5%로 감소하는 등 대학 취업률도 급격히 감소했다.

이번 UAE 사안은 탈원전 여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이 UAE 정비계약을 단독 수주하는 데 실패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국가의 건설 계약을 따내는 데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박상덕 서울대 전력연구소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은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의 수출이 힘을 잃는 건 당연지사”며 “2~3년 사용하는 스마트폰도 단종될 모델이라면 꺼리는 판에 60년 이상 돌릴 원전인데 오죽하겠느냐”고 지적했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