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주먹이 운다’는 늙은 복서 태식(최민식)과 소년원이 수감된 문제아 상환(류승범)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둘은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링에서 만나게 되지만 그 전까지 영화는 두 사람의 기구하고 가슴 아픈 사연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태식과 상환 중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한 채 두 남자의 뜨거운 승부를 지켜보게 된다. 

‘주먹이 운다’의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둘 중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다는 점이다. 누가 이겨도 감동받게 되고 누가 져도 가슴 아픈 싸움이다. 사나이들의 뜨거운 대결이 어떤 것인지 영화는 아주 절실하게 보여준다. 

우정사업본부(우본)와 전국우정노동자조합(우정노조)의 대결은 태식과 상환의 시합만큼 뜨거운 감동은 없지만 ‘주먹이 운다’와 닮은 면이 있다. 양쪽 모두 명분이 있고 누구의 편도 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정노조는 벌써 올해만 9명의 동료들을 잃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과로사로 추정되는 만큼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본은 우편사업 침체로 확대되는 적자와 지난해 국회에서 집배원 증원 예산이 삭감된 이후 주어진 환경에서 집배원 근로환경 개선과 수익창출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집배원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오토바이를 초소형 전기차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산업안전보건 전문가를 직접 고용해 건강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금융과 유통 등 수익사업에도 역량을 확대해 적자폭을 줄이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산하기관이라는 점과 우편사업 전체가 침체되고 있다는 점은 이같은 노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정노조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이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명분은 확실하다. 동료 9명을 잃었고 이런 사고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에 발맞춰 가기 위해 투자를 진행한 우본은 당장 집배원 증원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집배원 증원 예산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급한 불부터 끄자는 의미다. 집배원 증원이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지 정부와 국회가 관심을 가지고 현장을 살펴봐야 한다. 이미 이 문제는 우본의 책임 아래 해결할 수 있는 선을 점점 넘어가고 있다. 

지난해 국회는 예산심사에서 집배원 증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예결 소소위에서 이 예산 380억원이 사라졌다. 야당 의원까지 찬성했던 예산이 부처간 조율 과정에서 사라진 셈이다. 정부와 국회가 집배원 증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사이 집배원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 불편은 국민들이 떠안게 됐다. 우본과 우정노조는 13일 뒤면 큰 싸움을 앞두고 있다. 태식과 상환은 링에서 만날 수밖에 없고 링에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우본과 우정노조는 링에서 만나지 않아도 되는, 동반자다. 싸우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정부와 국회는 그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중재자다.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추경을 통해 집배원 증원 예산이 반영돼야 한다. 그리고 목숨을 잃은 집배원들을 위해 누구도 이 문제를 정쟁에 이용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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