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안중열 기자] 노환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향년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보낸 이 여사가 자신의 남편이자 영원한 정치적 동반자인 DJ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격동의 시절 김 전 대통령의 든든한 동지이자 파격적인 여성인권운동가였던 그의 삶을 되돌아본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997년 12월 19일 일산자택을 나서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집밖에서 기다리던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22년 태어나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거쳐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램버스대를 거쳐 스카렛대를 졸업한 이 여사는 국내로 돌아와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로 교편을 잡았다. 대한YWCA 한국 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여권 신장에 기여한 대표적인 여성운동가로 꼽힌다.

1962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정치적 동반자로서 격동의 현대사를 함께 해왔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과 납치 사건, 내란음모 사건과 수감,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 내 이어진 감시와 모진 탄압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 여사는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자 고령의 몸을 이끌고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김 전 대통령 재임 시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를 비롯해 여성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엔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 영부인 자격으로 평양에 첫 발을 내딛는 감격도 맞봤다.

이 여사는 평소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남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재직 중에도 시련은 이어졌다. 2002년 3남 홍걸씨에 이어 차남 홍업씨까지 연달아 구속되는 참담함을 맛봐야 했다. 이른바 ‘홍삼 트리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아들들의 잇따른 비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이 여사는 이때를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보다 더 힘들었던 때이자 기억하기 싫은 악몽의 순간으로 회상하기도 했다.

한편, 이 여사의 분향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된다.

조문은 11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14일 오전 6시 발인하고, 오전 7시 고인이 평소 다녔던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예배가 열린다. 이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면서 영면에 들어간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권노갑 민주평화당 상임고문과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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