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사이언스] ‘기생충’ 속 박 사장은 왜 하필 IT기업 CEO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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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마 사이언스] ‘기생충’ 속 박 사장은 왜 하필 IT기업 CEO인가
90년대 ‘벤처열풍’ 관통한 벤처 1세대…일반적인 재벌과 다른 캐릭터
  • 여용준 기자
  • 승인 2019.06.0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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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속 박동익 사장. [사진=CJ ENM]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마치 월드컵 4강이나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 같은 분위기였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주요 국회의원들까지 모두 축하 메시지를 건넸다. 

‘기생충’은 돈에 의해 상하관계로 나눠진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으로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품고 있는 영화다. 

그 수많은 이야기꺼리 중 이 코너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다가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익 사장’(박 사장)을 이야기 해보기로 했다. 

박 사장은 ‘기생충’의 상하관계 중 최고 정점에 있는 인물로 IT기업의 CEO이자 부잣집의 가장이다. 워커홀릭이며 자기 루틴이 철저한 사람이다. 

박 사장에게 집중하게 된 이유는 바로 ‘IT기업 CEO’라는 그의 정체성 때문이다. 한국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은 대부분 거대 그룹의 2~3세인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하면 IT기업 CEO라는 위치는 다소 특이하다. 

박 사장의 나이나 집과 자동차로 그의 과거를 유추해보자면 그는 소위 말하는 ‘벤처 1세대’에 가깝다. 90년대 중후반 대기업에 다니다 사내벤처 형태로 창업한 뒤 독립했거나 마음 맞는 동료들과 작은 사무실에서 창업해 밤잠을 설쳐가며 일을 한 경우다. 

네이버의 경우 삼성SDS에 근무하던 이해진이 사내벤처기업 ‘웹글라이더’를 설립한 후 1998년 1월 내놓은 서비스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역시 삼성SDS에서 일하다 퇴사하고 1998년 한게임을 창업했으며 ‘택진이 형’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역시 현대전자에서 근무하다 1997년 회사를 그만두고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김택진 대표는 이보다 앞서 1990년 이찬진, 우원식, 김형집 등과 함께 한글과컴퓨터를 창업하기도 했다. 

벤처열풍이 불었던 90년대 후반은 지금의 암호화폐 열풍과 닮아있었다. 제조업이 아닌 인터넷과 소프트웨어(SW) 사업이 주를 이뤘기 때문에 아이디어만 있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저마다 창업을 했으나 살아남은 회사는 일부에 불과했다. 벤처열풍의 거품이 빠지자 거대 인터넷 기업이었던 라이코스도 몰락했고 야후 역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정도였다.

영화 '기생충'. [사진=CJ ENM]

박 사장은 이런 벤처열풍과 함께 거품이 빠지는 시기까지 관통한 인물이다.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IT업계에서 계속 발을 담그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벤처열풍의 생존자인 셈이다. 

다만 ‘기생충’에서 박 사장의 회사가 정확히 뭘 하는 회사인지 등장하진 않는다. 영화에서 기택(송강호)이 면접을 보러 가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박 사장이 일하는 모습이 딱 한 번 등장한다. VR기기를 깔아두고 회의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VR기기를 생산하는 쪽인지 그에 걸맞는 콘텐츠를 만드는 쪽인지 알 순 없다. 다만 그를 ‘IT기업인’이라고 소개한 점으로 미뤄볼 때 후자에 더 가까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네이버나 카카오 등 대형 인터넷 기업들은 VR과 AR을 활용한 콘텐츠 연구에 한창이다. 

그렇다면 박 사장이 IT기업의 CEO라는 점은 영화에 어떻게 작용할까. 앞서 말한대로 한국영화·드라마에서 재벌은 안하무인한 갑질 캐릭터로 등장할 때가 많다. 모든 재벌 2~3세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어릴 때부터 불편한 것 없이 사랑받고 자라서 세상이 마음대로 되는 것으로 여긴 경우가 있다. 

그러나 IT기업 CEO는 앞서 말한 대로 본인이 스스로 기업을 일군 경우다. ‘기생충’에는 갑질 캐릭터보다 자기 루틴이 확실한 워커홀릭에 자수성가형 재벌이 필요했기 때문에 흔한 재벌보다는 IT기업 CEO가 더 잘 어울린다. 실제로 박 사장이 갑질하는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 IT기업에는 ‘경영승계’의 개념이 없다. 창업자들은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총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나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난 상태다. 이해진 창업자는 현재 네이버의 해외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 이사회의 의장이다. 창업자로서 현재까지 사업부문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은 김택진 대표 정도 있을 것이다. 

박 사장은 회의 장면을 봐도 사업부문에 면밀히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박 사장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을 할 수 있다. 현재 △네이버의 한성숙 대표처럼 후에 대표이사로 올라선 경우 △지주사 회장이 따로 있는 가운데 전문경영인으로 계열사를 이끌고 있는 경우 △창업한 회사의 지분을 유지한 채 재창업한 경우 등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 오직 봉준호 감독만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 ‘기생충’은 그 명성에 걸맞게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것들 투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르영화로써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압권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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