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한미 정상간 통화 내용 유출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자유한국당을 작심 비판하면서 정국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패스트트랙 정국에 이어 강효상 한국당 의원의 한미 정상 통화 내용 유출과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양정철 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의 부적절한 만남으로 여야의 날선 대치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어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 출입기자단에게 “대통령의 발언은 ‘외교 기밀 유출 사건이 정쟁의 도구라든지 당리당략에 이용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설명했지만, 악화일로의 정국에서 굳이 대통령까지 나설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외교부가 ‘국가 기밀 누설’로 규정해 강효상 의원에 대해 형사 고발 조치한 상황이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야당과는 기본적으로 ‘한국당이 국회로 돌아와서 대화를 해야 민생문제를 풀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한데 한국당을 특정한 대통령의 공개비판이 과연 정상화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오히려 대화를 제의했던 대통령의 의도마저 퇴색시킬 뿐이다.

정치권에선 기밀 유출을 방지하지 못한 외교부의 관리 부실 문제는 유출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외교관들을 징계 조치하는 선에서 마무리 가닥을 잡았지만, 그동안 반복적으로 제기된 외교부의 기강해이 문제를 비롯해 해외공관 중의 핵심인 주미대사관의 기밀 유출에 대해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나 조윤제 주미대사 등 이번 사태의 책임자급에 대한 책임론은 터부시한 채 한국당의 외교 기밀 유출 문제만을 드러내놓고 질책성 발언을 쏟아내는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춘추관 출입기자단 사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강경화 외교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지나친(?) 관대함이 의구심만 키우고 있다.

최근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비공개 만남 이후 불거진 정보기관 수장의 ‘정치 개입 논란’에 대한 대통령과 청와대의 침묵도 불편한 시선이 감지된다. 청와대 설명대로 개인적인 만남이었다고 해도 정보기관의 장과 여당의 선거전략 기획자가 남의 눈을 피한 만남은 여당 스스로도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이미 총력전에 들어선 시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서훈 국정원장이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양정철 원장과 함께 일하면서 친분은 있겠으나,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투명하지 않은 회동을 만들어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옛말에도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여론은 ‘문재인의 남자’로 민주당의 차기 총선캠프 책임자인 양정철 원장과의 회동을 ‘사적인 만남’이라는 청와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서훈 국정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실세라고 일컬어지는 양정철 원장에게 이미 지난 국정원 개혁만을 설명하고 총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해명도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여야 협치가 시급한 현 시점에서 굳이 ‘원칙’을 내세워 한국당을 향한 공개비판하면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강경화 외교장관이나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부적절한 회동엔 침묵으로 선긋기를 한다면 자칫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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