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2016년 11월 롯데그룹이 보유한 성주골프장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사드)가 배치된 후 중국과 한국의 갈등은 격해졌다. 이는 외교적 마찰뿐 아니라 경제적 마찰로도 이어져 당시 롯데를 포함한 국내 유통업계들은 극심한 부진을 겪어야 했다. 

롯데와 신세계는 이때의 영향으로 중국 사업을 사실상 접었고 동남아 지역으로 역량을 확대해 사업 다변화를 꾀했다. 사드 후폭풍으로부터 벗어난 방법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아니라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줄이면서 가능했다. 다시 말해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는 여전히 좋지 않다는 의미다. 

이 와중에 미국과 중국의 화웨이 사태로 불거진 무역 갈등은 자칫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되면서 ‘제2의 사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말 그대로 한국은 줄을 잘 서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봉쇄로 구글이 거래를 중단하면서 퀄컴, 인텔, 브로드컴 등 주요 부품기업들 역시 거래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맹국가인 한국을 향해 화웨이 봉쇄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요 부품기업들과 장비를 공급받아야 하는 이동통신사들이 눈치를 보게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 화웨이 역시 한국 부품기업 관계자들을 찾아 지속적으로 부품을 공급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 모바일사업부 임원은 23일과 24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부품기업들을 방문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제재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속적으로 부품을 공급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한국의 기업들은 난감한 입장에 놓였다.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 2위를 자랑하는 화웨이는 부품기업에게는 주요한 거래처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거래를 중단할 경우 중국의 보복을 당할 수 있다. 

특히 SK하이닉스와 LG디스플레이는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선 상황에서 보복이 이어질 경우 막대한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S10으로 겨우 회복하려던 중국 스마트폰 점유율이 다시 곤두박질 칠 수 있다. 

반대로 중국과 거래를 이어가면 미국의 무역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 내에서 5G 장비와 스마트폰의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우 미국의 제재가 있을 경우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거래선이나 상대 국가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는 자칫 심각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부품기업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외교의 지혜’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가지고 필요한 것을 최대한 취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이미 우리는 북한과 미국의 정상을 만나게 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번 스테이지는 그때 못지않게 어렵지만 기업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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