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톡 종료 후 팬들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는 황석희 번역가 <사진=이지혜 기자>

[이뉴스투데이 이지혜 기자] 외국어는 여전히 많은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지만 부쩍 외국어 잘하는 이들이 많아진 요즘이다. 그런 만큼 영화나 드라마 자막에 대해 요구하는 수준이나 객관성도 상향평준화 되고 있다.

좀 더 적극적인 애호가라면 자신이 보고픈 영상을 실력 있는 번역가가 맡아주길 바란다. 또 작가 문체를 즐기듯 영상에서도 개별 번역가 특유의 번역어투를 알아차렸을 때 저절로 광대가 승천 한다.

“존나 보고 황석희인 줄 알았다.” “황석희가 확실히 농담이나 가벼운 뉘앙스는 잘 살리는 거 같아요.” “피넛 파커 요거 피똥파커 했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다른 영화 보면 미국 유머를 한국식으로 의역하거나 적당히 뭉개는 게 많은데, 황석희 번역가 말대로 ‘개고생’하며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상은 이달 11일 개봉한 영화 ‘바이스’ 관련 댓글 가운데 일부다. 영상번역어투에 대한 평가와 애호가 드러나 있다. 이에 더 적극적으로 황석희 번역가와 소통하는 기회를 원하는 수요도 있다.

CGV 아트하우스에서는 이같은 트렌드에 따라 황 번역가 영화 중 선별해 ‘시네마톡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16일 저녁에는 CGV 여의도에서 영화 ’바이스‘를 이야기 했다.

영화 '바이스' 씨네마톡 <사진=이지혜 기자>

황석희 번역가가 작업한 이 영화는 2001~2008년 미국 조지W.부시 정권 당시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를 추적하고 있다. 2001년 9.11테러를 전시 상태로 상정한 까닭에 이후 그가 권력 실세가 될 수 있었고 그러한 정치 활동이 오사마 빈 라덴, 사담 후세인, IS(아이에스) 등 당시 중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폭로한다.

정치 영화인만큼 ‘바이스’에서는 일상 언어와 다른 낯선 경제·법률·군사 용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또 미국 문화를 이해해야 알 수 있는 표현이나 미국식 유머가 이어지다보니, 영어 듣기가 되는 것만으로 알아듣기도 어렵거니와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한국어로 대체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황 번역가는 우선 “이 영화를 작업할 때 언어 번역 못지않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역사적 사실인가 여부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운을 떼어 관객 공감을 단숨에 불러 모았다.

‘바이스’는 아담 케이 감독이 각종 상상력과 독특한 표현 방식을 뒤섞어 놓아 영화를 보면서도 이게 영화적 유머인지, 실제 역사인지 혼란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그동안 표면상 조지W. 부시(샘 록웰) 대통령에 대한 인상만 있던 많은 이들에게 이 영화는 마치 일종의 음모론 제기로 보이기도 한다.

<사진=무비썸>

관객 질의응답 시간에 영화 속 ‘팩트’는 몇 %쯤 되는지 질문해보았다. 황 번역가는 “영화에서 코믹스럽게 지나가는 딕 체니가 예일대에서 레슬링 주장을 했던 것조차 사실이었다. 영화 속 직책이나 역사 전개는 모두 실제”라며 “이런 경우 그대로 번역해야지 우리 식으로 꿰어 맞추는 것(예를 들어 ‘바이스’와 무관하나 미남으로 ‘브래드 피트’가 나온 것을 ‘강동원’으로 바꾸는 식)은 조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 오프닝에 언급돼 있는 ‘다음 이야기는 실화다. 혹은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다. 딕 체니는 역사상 손꼽히는 비밀스러운 지도자였으니까 하지만 우리도 존나게 최선을 다했다’와 영화 말미에 ‘명예훼손이나 문제가 될 지 안 될 지 변호사에게 이미 다 검토하고 영화로 내놓았다’고 하는 것이  그런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또 “내가 했지만 잘했다고 생각하는 번역을 꼽아달라”라는 관객 요청에 그는 다소 멋쩍어하면서도 “즐겨 사용하는 방법인데 한국어에 높임말과 반말이 있는 것을 종종 잘 써먹는다. 영화 속에서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며 ‘너 꼴리는 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죠’ 말하는 장면이 그렇다”고 노하우를 소개했다.

<사진=황석희 번역가 페이스북>

통상 영화 자막에서 금기하는 비속어 사용이나 ‘바이스’에서 딕 체니와 아내 린(에이미 아담스)이 셰익스피어 희곡 ‘리처드 3세’ 대사를 주고받을 때 글자체 변경 등에 대한 담론도 오갔다.

황 번역가는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조차도 비속어를 자막으로 채택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 아직 다수 영화사 분위기”라며 “바이스는 수준 높은 블랙코미디여서 시발을 시X로 표시해 자칫 장난같이 보여지는 것이 싫다고 설득했는데 다행히 받아들여졌다. 관객 가운데 이를 안 좋게 보는 분도 있고 남발해서도 안 되겠지만 ‘데드풀’ 같은 영화처럼 꼭 필요한 경우라면 쓰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바이스’ 수입·배급사 콘텐츠판다 관계자는 “19일 기준 개봉 9일만에 누적 관객수 10만명을 돌파했다.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영화로 20대에게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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