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퍼거슨 스태트슨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촬영=정환용 기자>

[이뉴스투데이 정환용 기자] 게임에 과몰입하는 현상을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할 때, 원인을 찾는 것보다 과몰입 자체를 증상으로 분석하는 것에는 의학적 증거가 없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6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제4회 게임문화포럼’이 열렸다. 크리스토퍼 퍼거슨 스태트슨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정의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등이 이날 강연을 맡았다.

◇증상일 수는 있으나 원인이란 의학적 증거는 부족
기조연설자로 강단에 선 퍼거슨 교수는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게임 중독에 대해 ‘모럴 패닉’을 언급했다.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슈를 집단에서 문제삼는 것이 확대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게임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

WHO는 오는 5월 국제질병분류 개정안에서 ‘게임 장애(Game Disorder)’ 질병코드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신의진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3년 알콜, 도박, 마약과 더불어 게임을 중독 대상으로 포함시키겠다며 게임중독법을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문화체육관광부나 보건복지부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

퍼거슨 교수는 인간이 춤, 낚시 등 자신이 좋아하는 행위를 할 때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연구가 있다고 언급했다. 심지어 고양이를 애완동물을 넘어 애니멀호더 수준으로 집착하는 사람에게서도 이런 현상을 파악했다는 연구가 많다. 하지만 도파민 분비 자체를 중독의 증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대표적인 예로 2011년 시행된 셧다운제가 있다. 게임 과몰입을 우려해 청소년이 심야 시간에 게임에 접속할 수 없게 한 제도다. 그러나 퍼거슨 교수는 “셧다운제 시행 이후 청소년 수면 시간은 불과 몇 분밖에 늘지 않았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며 “아이들이 겪는 문제를 원인 파악이 아니라 게임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퍼거슨 교수는 한 예로 미국 정신과학회에서 중독을 판단하는 몇 가지 기준점을 제시했다. ‘게임을 하지 않을 때 게임을 생각한다’, ‘게임에 많은 시간과 돈을 소비한다’, ‘적절한 때 멈추기 어렵다’ 등 질문을 제시한 그는 “‘게임’이란 부분에 게임이 아니라 다른 취미를 대입해도 비슷한 답이 도출된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어떤 현상의 증상을 원인으로 착각할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특정 장르 게임을 할 때 남자보다 여자가 인지능력이 떨어질 것이란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데이터셋에 많은 문제가 발견됐고 실제 테스트에서는 연구상 결과와 반대의 값이 도출됐다. 또 게임이 폭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명확한 근거가 없다.

퍼거슨 교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구세대들의 모럴 패닉 현상이 지금과 같은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유독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게임 과몰입 현상을 이슈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누군가는 게임 중독에 정치적 압력 등 게임 외적인 이슈를 개입시키려는 압력도 있다고 말한다. 한국이 게임 과몰입을 중독 장애로 인정한다면 훗날 ‘어리석었다’는 결론을 내릴지로 모른다”고 말했다.

정의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촬영=정환용 기자>

◇부모 자기통제력 높으면 자녀 자기통제력도 높다

정의준 교수는 게임 과몰입 현상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도출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게임을 중독으로 정의하려 할 때 주로 시간을 언급하는데, 병리적 접근으로 게임에 들이는 시간을 말하는 것은 게임을 증상으로 강조하기 때문이라는 것. 인지행동적·사회인지적 접근으로는 자기통제가 결여될 때 게임에 과몰입하게 되며, 이는 증상이 아니라 인지적 원인에 의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정의준 교수는 청소년 2000명을 대상으로 5년간 게임 과몰입 추적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일반·과몰입 2개 군으로 대상을 구분했을 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매년 50~60%의 과몰입군 청소년이 일반군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5년 내내 과몰입군에 속한 청소년은 총 11명으로 전체의 1.3%였다.

정 교수는 “과몰입에 속한 청소년들은 학업 스트레스, 외로움, 부모로부터의 과잉기대와 과잉간섭 등이 심해지면 자기통제능력이 낮아지며 게임에 과몰입하는 현상을 보였다”며 “청소년들이 게임에 과몰입하는 것은 사실상 부모가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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