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이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경총-법무부 상법 개정 관련 정책간담회에서 손경식 경총 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오너경영의 위기’를 실감한 재계가 이제는 상법 개정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에 따르면, 각 기업들은 국내 양대 대형 항공사 사주가 권력의 핵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을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오너경영을 압박하는 여론의 흐름이 이번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갑질 논란과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도 국민연금을 비롯한 의결권 자문사들의 조직적 반대에 앞서 ‘스스로의 퇴진’을 선택했다.  

이처럼 재벌 그룹 전반에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상법 개정안의 4대 쟁점 중에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양보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혀 타협안 도출이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를 추진하기보다, 반발이 약한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부터 추진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이번 개정안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비췄다.

이는 상법개정안이 국회 패스트트랙에서 제외되면서 법적용 당사자인 재계와의 합의를 통해 입법에 속도를 내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타협안 역시 “반발이 적으면 악법을 강행하고, 아니면 말겠다는 입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와 관련 4대그룹 한 관계자는 “미국·일본에서 도입 중이지만 적용사례가 거의 없어 상대적으로 반발이 적어 보이는 것일 뿐”이라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를 통제하도록 하는 상법상 법인격 독립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전자투표 의무화 역시 실효성 논란이 여전하다. 토론·회의체로서의 주주총회 성격이 퇴색되고, 오너경영에 적대적인 스튜어드십코드로 무장한 의결권 자문사들이 ‘선거 판세를 쥐고 흔드는 정치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자투표가 의무화되면 주주총회 개최 이전에 쌍방향이 아닌 일방향의 의사결정이 진행되는 구조"라며 "이렇게 되면 주주총회는 부재자 투표장으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를 목표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타협안을 반드시 도출하겠다는 각오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기업을 압박하기보다는 스스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정의실천연합이 이날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주총에서) 주주권행사 대상과 범위를 대폭 축소했다”면서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해, 연착륙을 시도해온 정부의 입장이 난감하게 됐다.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준칙으로 하는 스튜어드십코드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박상인 경실련 정책위원장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ESG가 오히려 자의적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법령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한 것일 뿐”이라며 “이를 무시하고 시민단체만의 잣대를 들이대고 따르라는 것은 ‘무정부 상태’로 가자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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