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사법부, 차라리 AI에 재판을 맡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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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잃은 사법부, 차라리 AI에 재판을 맡긴다면?
[씨네마 사이언스] 살인누명 뒤집어쓰고 15년 복역한 소년 다룬 영화 '재심'
'사람의 재판' 신뢰할 수 없다면 차라리 AI에 맡겨보면 어떨까
  • 여용준 기자
  • 승인 2019.03.30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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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은 한 소년이 경찰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를 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재심’은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 경찰은 15살 다방배달원 최모군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사건을 담당한 박준영 변호사는 경찰이 폭행과 강압수사로 15살 소년에게 살인누명을 씌우고 있다고 판단했다. 오랜 법정 싸움 끝에 2016년 11월 살인죄로 복역하던 최군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최군은 억울한 누명을 벗었으나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20대 시절을 감옥에서 보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의 이야기는 영화 속 단골 소재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도 앤디(팀 로빈슨)는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썼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 ‘7번방의 선물’ 속 용구도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혔다. 

위기에 몰린 사람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기본 요소다. 이를 보는 관객은 큰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만약 누명을 쓰거나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을 정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면.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극작가들은 이야기 소재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법부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한다’는 발상은 법조인부터 작가까지 여러 일자리를 잃게 할 수 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사실상 AI로 대체 가능하다면, 재판을 하고 판결을 내리는 일도 AI가 할 수 있을까. 

이미 ‘AI 판사’를 향한 연구는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런던(UCL)과 셰필드대,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공동연구팀은 “AI 판사가 인간의 판결 79%를 예측했다”는 연구결과를 밝혔다.

연구진은 이 AI 판사가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판례 584건을 토대로 훈련받았다고 밝혔다. 만약 학습데이터가 더 많아진다면 AI 판사의 판결 적중률은 더 올라갈 수 있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는 눈을 가린채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판단하겠다는 의지로 눈을 가렸다. 인간은 과연 눈을 가린 채 판결이 가능할까. <사진=픽사베이>

AI가 사건 판결을 한다면 증거와 증언을 모두 데이터화해서 기존 판례나 법조문에 대입한 다음 판결을 내릴 것이다. 당연히 판결은 신속해질 수밖에 없다. 수년씩 걸리던 재판도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판사가 1년에 맡는 본안사건 수는 최대 1000건에 이른다. 

그리고 AI가 재판을 하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사람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은 공공연하게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을 입에 올리고 있다. 삼권분립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당연하다는 듯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단어도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인정과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씁쓸한 명제를 달아보자. 그렇다면 사람 사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재판에서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사람이 하는 그 일을 사람이 아닌 것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다만 AI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어벤져스:에이지오브울트론’에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방어용 AI로 개발한 울트론은 방어시스템 구축을 위해 역사적 사례를 학습하던 중 인간을 지구의 위협으로 인식한다. ‘아이, 로봇’에서도 로봇들은 인간을 방어하기 위해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인간을 공격하고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통제하는 일을 벌인다. 

AI의 학습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요한 일을 AI에 맡기는 것은 여전히 위험하다. 현재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AI가 판검사의 판결을 지원하고 도움을 주는 방법일 것이다. 

이미 2017년 미국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AI 알고리즘 자료에 근거해 형사재판 피고인에게 중형을 선고한 하급법원 판결을 타당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 역시 2021년 구축을 목표로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후 AI 소송 도우미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에 대해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사법부가 신뢰를 잃었음을 의미한다. 사진은 15일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공수처 설립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법원과 검찰은 국가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시스템이다. 특히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을 내리는 곳인 만큼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정확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법부가 보여준 모습은 ‘정직한 집단’보다는 ‘거대 권력’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여론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공수처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여론은 국가 시스템이 신뢰를 잃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AI가 재판을 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발상에서 시작된 이 글 역시 국가 시스템의 신뢰에 대한 이의제기에서 시작됐다. 

경찰과 검찰, 법원이 좀 더 공정하고 정확하다면, AI에 직장을 잃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작가들은 다른 소재를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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