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윤진웅 기자] “지금도 시설 좋고 비싼 고시원은 많아요. 우리가 그걸 몰라서 여기 (낡은) 고시원에 사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창문 백 개 달린 것보다 방세가 1만원이라도 싼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서울형 주택 바우처’ 대상이 아니어서 지원금 5만원도 안 나와요. 학자금 등 빚이 많아 한 푼이라도 아껴 제 삶을 정상 궤도에 올리고 싶은데 자격 미달인 거죠”

“창문 설치 여부에 따라 최대 15만원 차이가 나요. 또 기존 고시원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면 설치기간 동안 영업보상은 모두 거주자 부담이 되겠지요. 참 안타깝습니다”

노량진 고시촌 골목에 설치된 안내판. <사진=윤진웅 기자>

지난 18일 서울시의 ‘노후고시원 거주자 주거안정 종합대책’ 발표 후 찾은 노량진과 신림의 고시촌.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붐벼야 할 고시촌 거리는 기자의 예상과 달리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멀끔한 정장차림으로 출근하는 회사원, 작업복에 안전화를 신고 새벽같이 길을 나서는 일용직 노동자, 몸집만 한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앳된 학생, 밤을 지새운 듯 졸린 눈으로 고시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년.

이들은 왜 고시촌에 살게 된 것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기자라는 얘기에 부담을 느꼈는지 겨우 짧은 한마디를 던지곤 이내 걸음을 재촉해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들이 던진 공통된 짧은 한마디를 통해 기자는 이들이 왜 이곳에 살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살아보려고”였다.

그렇다. 이제 고시촌은 쪽방에 앉아 공부만 하는 학생들의 공간이 아닌 주거 취약계층의 삶의 터전이자 마지막 동아줄과도 같은 곳이었다.

밖에서 식사를 마친 청년들이 고시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윤진웅 기자>

서울시는 이러한 고시원 거주자의 주거 인권을 바로 세우고 안전과 삶의 질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18일 ‘노후고시원 거주자 주거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7명의 사망자를 낸 국일고시원 화재 이후 마련한 종합대책으로 고시원 거주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향후 서울에 들어서는 고시원은 방 면적이 최소 7㎡ 이상이어야 하고, 방마다 창문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의 바람과는 달리 실제 거주자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높아진 안전 기준 탓에 되려 입실료가 높아져 다른 의미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

노량진 고시원에 거주하는 최 모씨(30대·남)는 “창문 하나에 10만원 차이인데 고급 고시원이 새로 지어지면 인근 저렴한 고시원의 공급은 더욱 줄어들어 결국 방값이 올라갈 것”이라며 “정부의 지원으로 시설 비용을 충당하더라도 조건이 달라지면 방값은 올라가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고시원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진=윤진웅 기자>

한편, 서울시는 이러한 부작용을 예상해 중위 소득 45~60%에 해당하는 거주민에게 월 5만원의 주거 비용 바우처를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시원 거주자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서울형 주택 바우처에 고시원 거주자라는 대상을 추가하는데 그쳐서다.

방값이 5만원보다 약 두 배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될 뿐더러 주택 바우처 대상은 아니지만 고시원에 살 수밖에 없는 시민의 현장 목소리를 청취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림9동 고시촌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 모씨(30대·남)는 “소득을 기준으로 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문제는 고시원 방값은 5만원보다 더 올라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본인은) 기준치를 넘어도 빚이 많아 힘들게 고시원 살이를 하고 있는데, 월급쟁이들은 고시원에 살면 안 되는 건가요”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남대문에 위치한 쪽방 고시원 내부 모습. [연합뉴스]

기존 노후 고시원에 설치하는 간이 스프링클러가 방값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시는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고시원 주인에게 입실료 동결 기한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하면 3년 뒤 입실료를 올릴 수 있어 설치를 독려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입실료 동결 기한을 없애는 방법도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설치비를 각각 3분의 1씩 부담하고 나머지를 고시원 주인이 부담하는 매칭사업이 그렇다. 비용을 부담한 주인은 입실료 동결 기한 규제를 받지 않아 바로 입실료를 조정할 수 있다.

반면, 노량진 H고시원 주인 A씨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A씨는 “설치하면 동결 기한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설치를 안 하면 동결 기한을 늘리는 패널티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맞다”면서 “안전에 관해 엄격한 것은 주인들도 일정 부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어 “고시원을 운영하는 입장이지만 학생들의 딱한 사정을 알기에 마음이 쓰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방값이 오르는 이유는 단순히 설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동안 발생하는 공실에 대한 영업보상이 없다. 입실료가 오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명분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공사는 고시원 주가 직접 선정하는 업체가 하는 것이라서 영업 보상은 따로 없다”면서 “전체를 공실로 할 수는 없으니 층을 나눠 공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공실로 인한 영업 손실은 어쩔 수 없이 주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의 고시원 대책이 결국 실거주자의 부담과 시민의 세금 낭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는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예산을 2.4배로 늘려 총 15억원을 노후고시원 70여곳에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1곳당 21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셈이다.

또한 중앙정부와 협력해 관련 법을 개정, 향후 2년 내 모든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가 설치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서울에 있는 5084개 고시원 중 스프링클러가 없는 고시원은 1061개에 달한다. 스프링클러를 모두 설치할 경우 약 224억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간다.

아울러 서울시는 올해 ‘고시원 리빙라운지’ 시범 사업과 ‘리모델링형 사회주택’에 각각 50억, 72억을 투입한다.

일각에서는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를 담당하는 고시원에 단순 법률을 적용해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노후 고시원에 주거하는 사람들의 환경부터 세심하게 살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표정없이 고시촌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음이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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