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안중열 기자] 지난 18일 비례대표 75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권역별로 배분하는 여야 4당(자유한국당 제외)의 선거제도 개편 단일안이 도출되면서 지역구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한국당이 선거구제 개편 논의과정에서 반발해왔고 단일안 도출에 참여한 여야 4당 내부에서조차 격론을 벌인 이유다. 중앙선거위원회발 ‘예상 살생부’가 공개되면서 여의도 정가가 극심한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바른미래당 김성식(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민주평화당 천정배 간사가 17일 오후 여야 4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를 위해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여야4당, 선거구제 개편 단일안 극적 합의= 한국당을 제외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야 4당 실무진이 지난 17일 ‘225대 75(지역구 대 비례대표)’, ‘50% 권역별 연동’을 핵심으로 한 선거제 개편 단일안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여야 4당은 ‘밀실 협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비례대표 공천 기준·절차 당규 명시 △당원이나 선거인단 투표 결정 △공천 심사·투표 과정 회의록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출 등 투명성을 높였다.

기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선거연령을 인하하는 방안도 포함시켰다.

심상정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은 이날 단일안 합의 도출 직후 “과감한 혁신을 통해서 비례대표 공천 절차를 아주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의원총회에 단일안을 올려 의원들을 설득 중인 각 당의 추인 과정이 마무리되면 해당 법안은 즉각 패스트트랙 과정에 들어간다.

◇ 바른미래당‧민평당, 협상과정서 삐걱했던 배경은= 개편안 핵심은 의석수 300석을 고정하되, 비례대표 75석을 전국단위 정당득표율 50%에 따라 권역별로 배분하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 대표제’ 적용이다.

단일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당장 기존 지역구가 253석에서 26석 줄고 그만큼 비례의석으로 채워진다.

선거제도 개편 단일안 도출 과정에서 여야 4당이 엇박자를 낸 배경은 이렇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단일안에 따라 전국 지역구 숫자가 225석으로 축소되면 수도권 10곳, 영남 8곳, 호남 7곳, 강원 1곳을 통폐합 우선 대상지역으로 꼽았다.

국회 이용호 의원 등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구 숫자가 가장 많이 줄어드는 곳은 수도권이고 영남, 호남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지역구 감소율은 총 28개 지역구 가운데 25%에 해당하는 7개가 통폐합될 수 있는 호남이 가장 크다.

호남을 텃밭으로 두고 있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 여야 4당 합의과정에서 어깃장을 놨던 이유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솔직히 우리 당 기반이 호남밖에 없질 않냐”며 되물은 뒤, “거기에다 우린 소수당이다. 거대 양당이 독식하는 선거구제를 개편하자고 시작된 협상이 우리에겐 자충수가 된 게 아닌가 싶다”고 토로했다.

중앙선관위 지역구 통폐합 우선지역을 살펴보면 수도권에선 △서울 종로(정세균·민주당) △서울 서대문 갑(우상호·민주당) △인천 연수 갑(박찬대·민주당) △인천 계양 갑(유동수·민주당) △경기 안양 동안 을(심재철·한국당) △경기 광명 갑(백재현·민주당) △경기 동두천 연천(김성원·한국당) △경기 안산 단원 을(박순자·한국당) △경기 군포 갑(김정우·민주당) △경기 군포 을(이학영·민주당) 등 10곳이 꼽힌다.

심상정 정개특위위원장이 18일 오후 국회 정의당 회의실에서 여야 선거제 단일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소속당 당론과 별개로 반발 컸던 이유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선거구제 개편안에 반대한 이유도 있다.

영남에서는 △부산 남구 갑(김정훈·한국당) △부산 남구 을(박재호·민주당) △부산 사하 갑(최인호·민주당) △대구 동구 갑(정종섭·한국당) △울산 남구 을(박맹우·한국당) △경북 김천(송언석·한국당) △경북 영천·청도(이만희·한국당)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강석호·한국당) 등 8곳이 포함됐다.

호남에선 △광주 동구·남구 을(박주선·바른미래당) △광주 서구 을(천정배·민주평화당) △전북 익산 갑(이춘석‧민주당) △전북 남원·임실·순창(이용호·무소속) △전북 김제·부안(김종회·민주평화당) △전남 여수 갑(이용주·민주평화당) △전남 여수 을(주승용·바른미래당) 등 7곳도 들어갔다.

지역구 의원들 가운데 자신 지역구가 통폐합 우선지역으로 거론되는 상황이 달가울 리도 없다.

강원에서는 속초 고성·양양(이양수·한국당) 1곳이 들어갔다.

여야 할 것 없이 우선 통폐합 지역으로 거론되는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은 향후 패스트트랙까지 가는 과정에서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우리 당이 검경수사권이나 공수처를 다루면서 특정 지역구의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며 “그동안 갈고닦은 지역구가 소멸되는 청천병력 같은 상황은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 관계자는 “이건 명백한 ‘밀실협상’이자 국민기만행위”라면서 “제1 야당이 반대를 하는데 세를 모아 불공정한 선거룰의 합법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강력 비판했다.

민주평화당 관계자는 “호남지역의 정치력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선거구제 개편 단일안은 파기해야 한다”며 “언론에서도 나왔지만 일부 의원은 탈당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이번에 합의된 단일안에 불만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 한국당 반발, 민주당 내홍 배경엔= 중앙선관위 자료에선 여야4당과 한국당에서 당론이 모아지지 않고 있는 배경도 엿볼 수 있다.

중앙선관위에서 분석한 통폐합 우선지역을 살펴보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수도권 7곳, 영남 2곳, 호남 1곳 등 총 10곳이 사라진다.

한국당 입장에선 수도권 3곳, 영남 6곳, 강원 1곳 등 10곳이 줄어든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호남에서 각각 2곳과 3곳, 무소속은 1곳이 사라진다.

강원도에서는 강원 속초 고성·양양(이양수) 1곳이 소멸된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산식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워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산식이 곧 민주주의 질서인데 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국민은 알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은 오만하다”며 “국민이 알 필요도 없고, 국민이 뽑을 필요도 없다는 국민 패싱 선거법으로 이제는 국민까지 패싱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10곳이 소멸되는데, 사실 수도권 몇 곳과 영남 2곳은 한국당이 언제든 가져올 수 있는 지역구”라며 “결국 이번 선거법 손질 과정에서 최대 피해자는 우리 한국당”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선거법을 뜯어고치면서 공천학살을 방불케 한다”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참석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패스트트랙까지 험로 예고= 선거구 조정 기준인 산식은 현재까지는 공개된 바 없기 때문에 섣부른 예단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구간 인구비율이 2대1 초과 금지’를 골자로 한 헌법재판소 판례도 있지만 최대 인구수에 따라 통폐합 지역도 바뀔 수 있고 중요 변수인 차기 총선에서의 정당 지지율도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중앙선관위의 통폐합 우선지역 리스트가 공개되자 여야 정치권 분위기에선 우려와 혼란이 동시에 감지된다.

여기에 바른미래당 내부에서 연동률 100% 미적용에 불만의 목소리가 있고 평화당에서도 일부 의원이 호남 지역구의 의석수 감소에 반발하면서 각 당 추인을 거쳐 실제 패스트트랙 성사를 장담할 수 없다.

패스트트랙 세부사항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등을 넣으려는 민주당과 야 3당의 합의과정도 낙관하기 힘들다.

특히 1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참석자들과 “날치기 선거법 OUT”을 외치고 있는 한국당이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에 강력히 반발하며 모든 당력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는 경고음도 무시할 수 없다. 제1 야당을 배제한 합의안이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려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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