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국민연금공단이 ‘의결권 행사 사전 공개 제도’ 시행 첫날부터 체면을 구겼다. 내부적으로 마련된 의결권 행사지침이 지나치게 자의적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5일 본격적인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찬반 여부 사전 공개 제도’ 시행 첫날부터 주주들과는 ‘거꾸로 가는 선택’을 하며 고배를 마셨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주주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 역할을 자처하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의결권 행사 지침을 발표했다. 이어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10% 이상이거나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이 1% 이상인 상장사를 대상으로 주총 전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의결권정보광장’을 통해 일반에 찬반 여부가 공개되기 시작한 14일, 현대글로비스, LG하우시스의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이 올랐지만, 국민연금은 ‘나 홀로’ 반대표를 행사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국민연금이 사전 공개를 통해 반대 의사를 천명한 것은 이날 두 회사의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을 비롯해 주로 사내·사외 이사 선임 또는 감사위원 선임에 관한 건이다. 

기업지배구조원으로 공개되는 찬반 정보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결정 사안이 아닌 ‘일반 의결권 행사지침’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에 현대글로비스 지분 10.2%를 확보한 국민연금은 ‘이사 보수 한도 승인’ 건 처리에 앞서 반대를 예고했지만 의결 결과는 찬성이 86.9%에 달했다.

14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의결권정보광장에 의결권 행사 정보가 사전 공시된 주주총회 안건들.

㈜LG에 이어 2대주주로 12.63%의 지분을 가진 LG하우시스의 주총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다수의 주주들이 지지표를 던지면서 안건은 가결됐다. 회사 관계자는 “세부 찬반 비율은 민감한 부분이어서 최종 의결 결과는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주들의 반발은 국민연금이 방향을 정하면 다른 투자자들도 이에 따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주주들이 자신의 권익 보호를 위해 독립적 판단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스튜어드십 코드 본연의 목적인 주주가치 제고가 아닌 애매모호한 도덕적 규정에 의존하다보니 현실과의 불일치가 발생한다”며 “내부 행사지침을 좀 더 시장경제 취지에 맞도록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연금은 이날 LG하우시스 대표이사(CEO)도 이사회 의장을 겸직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변경 건에 대해서는 반대표를 던지며 제동을 걸었다. 

국민연금이 공개한 의결권 행사지침을 보면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의 직책을 분리하는 안에 찬성하고, 분리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없이 합치하는데 반대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삼성그룹, SK그룹 등이 최근 이사회 독립성을 위해 대표이사가 의장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지만,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감독기관이 아님에도 일시적 분위기에 편승해 기업 자율권을 해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의 의사 결정이 정부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은 총 644조원을 운용하며 270여개 상장회사에 지배력을 행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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