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모 산업부 장관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재생에너지 산업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계통연계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면서 사용 가능한 전력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이대로 가다간 전력수급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준상 기자] 정부의 재생에너지 ‘낙관론’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계통연계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면서 사용 가능한 전력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어서다. 이대로 가다간 전력수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장기적으로 정전 사태를 부를 수 있다는 진단이 따른다.

13일 본지가 입수한 산업통상자원부 내부 문건에 따르면 2016년 10월부터 2018년 12월말까지 전국의 1MW 이하 태양광 발전사업자가 한국전력공사에 계통 접속을 신청한 용량은 총 12.1GW에 달한다. 건수로는 5만5486건이다.

하지만 이중에 접속이 완료돼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전력은 2540MW로 전체의 20.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접속 대기 3168MW(26.1%), 배전선로와 변압기 보강 4749MW(39%), 변전소 신설 1703MW(14%) 등 아직 접속되지 않은 물량이다.

한마디로 민간 발전사업자가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한 후 한전에게 계통연계를 신청한 5곳 중 4곳은 발전사업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달 산업부는 2018년 한 해 동안 재생에너지 설비를 2989MW(잠정) 신규 보급하며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보다 72% 초과 보급했다고 발표했다. 계통연계 실태를 고려하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자칫 ‘재생에너지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는 우수한 성적표로 둔갑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작년 재생에너지 보급량이 늘었다는 정부의 언급은 보급 신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며 “계통 수용능력을 갖추지 못해 전력 생산량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게 실상”이라고 설명했다.

인체 위험 요소가 없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은 먼 거리에서 전선을 통해 소비자에게 끌어오지 않고 주택 지붕, 농지, 상업시설 등에 직접 설치할 수 있다. 발전설비 설치 후 별도로 송배전선망을 설치하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분산형 전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재생에너지 접속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에너지 전문가들은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이 지가가 비싼 인구 밀집 지역을 피해 계통 연계가 열악한 지방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태양광 발전사업자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 혹은 인근은 땅값이 너무 비싸 발전 이익보다 토지 지출 비용이 더 나간다”며 “이같은 이유로 많은 발전사업자들이 땅값이 저렴한 전라도와 경상도 등지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지방은 전력을 수요지로 이동시키는 계통연계가 열악한 수준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민간 태양광 발전사업 접속 신청률은 전남이 1위, 뒤를 이어 전북과 경북이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작년 기준 전남·전북에 신규설비의 33%가 집중 설치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남과 전북의 계통연계 완료 비중은 각각 3.8%, 3.3%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자 한전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전은 최근 ‘제8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서 각별히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계통 수용력을 제고하겠다고 선언했다. 2031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신청이 몰리고 있는 전남 7곳, 전북 3곳, 경북 2곳 등에 송전·변전설비를 집중 신설‧보강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미비된 계통연계를 마련하는 기간이 적지 않아 정부가 제시한 재생에너지 확충 목표가 상당히 차질을 빚을 것이란 분석이다. 분산형전원인 1MW 미만은 전체 태양광의 80% 이상 차지한다. 한전의 계획이 차질 하나 없이 이행되더라도 송배전선망 구축이 완료되는 시점은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서 전체 발전원 중 재생에너지 20%(63.8GW)를 확보하겠다는 2030년이 훌쩍 넘어간다. 

계통연계가 늘면 한전의 부담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김삼화 의원(바른미래당)이 한전에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계통연계 공용망 보강비용은 2017년 305억5400만원에서 지난해 1421억1900만원으로 4배 넘게 뛰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제8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은 2031년까지 송전·변전설비 신설‧보강 비용으로 26조4479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전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적자가 2080억원임을 고려하면 한전에게 막대한 적자를 안기는 이 계획대로 추진될 가능성은 작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삼화 의원은 “재생에너지는 보급을 늘려도 계통연계가 받쳐주지 못하면 발전자원으로 의미없고 정전 확률이 높아진다”며 “신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계통 신설 비용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경남 밀양 송전탑. 시간이 지날수록 계통연계 확충이 순탄하게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 더해진다. 송전선로를 지나는 지역 주민 반대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뉴스투데이 DB]

여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순탄하게 계통연계를 확충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예측이 더해진다. 송전선로를 지나는 지역 주민 반대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한전 관계자는 “밀양 송전탑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조상 대대로 물려온 토지 위에 고압 송전선이 흐르고 송전탑과 전선의 그림자가 지는 것을 수용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며 “게다가 농촌에는 일정 거리 간격으로 여러 지주들이 포진돼있어 송전탑 건립을 위해 한 명 한 명을 설득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계통망을 늘리기보다 마이크로그리드를 대안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소규모 독립형 전력망인 마이크로그리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융·복합된 차세대 전력 체계로 소규모 지역에서 전력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이다. 

홍권표 신재생에너지협회장은 “ESS와 수소 연료전지를 이용한 분산형 전원을 확충하면 계통망 설치를 두고 발생하는 갈등을 대폭 줄일 수 있다”며 “마이크로그리드가 실현될 경우 소규모 전력공동체는 자체 전력망 내 전기수요를 100% 충당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계통망 대신 마이크로그리드를 이용하는 발전사업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작은 단위라도 모델을 만들어 확산시켜야 보급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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