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가 바라던 걸 하나씩 이루며 너를 지키지 못한 것을 속죄하며 살아가겠다. 비록 내 아들은 원통하게 갔지만 아직도 아들의 동료들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다시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나라가 책임 있게 행동하라.”

지난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의 영결식장에서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마이크를 잡고 절규한 내용이다. 그의 외침은 비단 자신의 아들뿐만 아니라 각종 안전사고로 희생된 파견 근로자들의 울분이었을 터. 이번 사고가 던진 메시지와 우리 사회엔 어떤 변화들이 있는지 살펴본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하관식이 9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원청, 안전사고 책임회피 위해 위험업무 외주화=김용균씨는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근로자로 취직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9·10호기 석탄운송설비를 점검하던 중 입사 3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11일에 사망한 청년노동자였다.

기업(원청) 정규직 근로자가 맡아야 마땅한 업무 중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분아만 떼어내 하청을 주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원청이 민·형사상 책임뿐만 아니라 행정상 들어갈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회피를 위한 이른바 ‘위험업무의 외주화’다.

대개는 입찰로 진행된다. 하청을 받기 위한 외주업체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입찰금액은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그 과정에서 원청은 응찰기업 중 충분한 돈을 지급하지 않아도 위험업무를 맡을 수 있는 외주업체를 낙찰한다. 그렇다고 하여 하청업체의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이는 하청업체가 직원들 안전장비 지급 등에 소홀한 채 비용절감에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다.

◇ 김용균법 국회 문턱 넘고 곳곳 변화 조짐=도마 위에 오르내리다 시간이 지나면 묻히곤 했던 부조리한 원·하청 간 구조적인 문제는 이번 고 김씨의 사고를 계기로 작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원·하청 문제는 고 김씨 사고 소식으로 여론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위험성·유해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하도급 금지’와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원청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책임 강화를 위해 형벌도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강화됐다. 안전의무 소홀로 사망사고 발생 시 원청도 하청과 같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도록 했다.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에 재발될 경우 2분의 1까지 가중처벌 된다.

사회적으론 일터의 안전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외주화의 위험과 근절 필요성이 인식됐다. 당정은 시민대책위와 함께 점검 중인 ‘김융균씨 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에 앞서 그동안 발전 5개사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거부해온 연료환경설비운전 업무에 대해 발전소 직접고용 전 단계인 공공기관으로서의 정규직 전환을 이끌어냈다. 상시적 정비업무를 맡는 경상정비 분야 발전 노동자의 경우도 통합 노·사·전 협의체를 구성해 합의 전까지 고용불안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위험업무의 외주화 방지’ 원칙을 확인하고,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고에도 원·청사에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 당정은 원청이 당초에 정한 금액대로 하청 노동자에게 임금 삭감 없이 지급하도록 해 부당한 ‘중간착취’를 없애나간다.

‘김용균시민대책위’와 당정의 합의안도 도출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위원회(진상규명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고 사고가 발생한 구조적 원인을 조사해 재발방지 및 근본적 개선방안을 6월 30일까지 마련해 시행한다. 작업현장에서 유사한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2인1조 운영과 인력 부족 시 적정인원 충원 내용도 담겼다. 또 향후 공공기관 작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 사고는 원·하청을 불문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다.

◇ 위험업무 외주화, 원천적 금지로…처벌기준 강화만큼 실효성도 높여야=다만 ‘김용균법’이 연착륙해 위험업무 수행 중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막기까지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위험·유해 작업의 범위 확대와 함께 ‘원칙적 합의’에 그친 사내하도급 금지를 ‘원천적’으로 진전시켜야 한다. 아울러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해 사고가 발생하거나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강화된 처벌기준만큼이나 실효성 있는 처벌도 필요하다.

당정의 합의문 역시 선언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특별노동안전위원회 등을 통해 실행계획을 구체화해야 한다. 당정의 실행 의지는 필수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비롯한 여론의 목소리도 담아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사용자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소홀히 해 근로자들이 죽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음에도 솜방방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빈번해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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