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극한직업’>

[이뉴스투데이 이하영 기자] 개봉 15일 만에 1000만 영화에 등극해 축제 분위기인 ‘극한직업’과 개봉 6일동안 겨우 100만 관객을 모은 ‘뺑반’의 희비가 갈렸다.

제작비 130억원을 쏟아 부은 ‘뺑반’이 손익분기점을 고민할 때, 65억을 투자한 ‘극한직업’은 8일 하루에만 40만9352명을 동원하며 누적관객수 1139만9876명을 기록했다. ‘변호인’(양우석)을 누르고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3위에 올랐다. 누적매출액도 988억원을 넘어 벌써부터 속편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다.

올해 1월 ‘극한직업’(1월 23일)과 ‘뺑반’(1월 30일)의 잇따른 개봉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설 연휴 극장가 대목에 ‘쌍끌이 흥행’을 점쳤다. 똑같이 경찰이 주인공이지만 코미디와 액션으로 장르가 다른 두 영화가 침체에 빠진 한국영화계 부활 신호탄을 쏘아 올릴 것이란 예상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막상막하일줄 알았던 두 작품의 성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였다.

<사진=영화 ‘극한직업’>

◇빈틈없는 스토리 vs 골다공증 스토리=어딘가 허술한 마약반 5명이 주인공인 ‘극한직업’은 잠복근무를 위해 경찰들이 치킨장사를 시작하는 것이 줄거리다. 치킨장사로 대박을 내며 어딘가 본말전도된 뉘앙스를 풍기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5인방이 마약반으로서 진면목을 펼쳐 보인다.

그 과정에서 류승룡(고반장), 이하늬(장형사), 진선규(마형사), 이동휘(영호), 공명(재훈) 등이 허당 매력을 발산해 관객의 배꼽을 잡는다. 또 형사의 애환을 소시민적 비애와 함께 버무려내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웃음과 찡한 감동을 더한다.

‘극한직업’이 꽉 찬 느낌을 준다면 ‘뺑반’은 구멍 숭숭 뚫린 한참 우려낸 사골 같다.

경찰 내 최고 엘리트조직 내사과는 F1 레이서 출신 사업가이자 뺑소니범 정재철(조정석)을 붙잡으려 고군분투한다. 경찰 비리가 얽히고설켜 꽤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보여줄 것 같지만 사실 스토리는 매우 단조롭다.

사건 흐름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몇 장면 없는 회상신을 제외하고는 관객이 헛갈리려야 헛갈릴 수 없는 단순한 구조로 짜여있다. 뒷부분에 나오는 반전 또한 관객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 극의 몰입도를 높이지 못한다.

◇5명 모두 주인공 vs 조연이 주인공=‘극한직업’에서 이하늬와 진선규 콤비가 웃음 폭발에 큰 역할을 담당하지만 다른 인물의 존재가 묻히는 것은 아니다.

류승룡도 전작 코미디 주연작 ‘염력’에서 채 발휘하지 못한 웃음기를 중독성 넘치는 ‘수원 왕갈비 통닭’ 소개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오열로 장식해 화제를 모았다.

그렇다고 이동휘와 공명의 존재감이 흐릿했던 것도 아니다. 과묵하고 뚝심 있는 영호 역을 맡은 이동휘는 마지막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로 관객 시선을 모으고, 막내다운 귀여움이 뚝뚝 묻어나는 공명은 양파 까기부터 약(!)에 취한 연기까지 귀엽게 소화해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반면에 공효진을 맨 앞줄에 세운 ‘뺑반’은 조정석(정재철)과 류준열(서민재) 투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줄거리 소개나 예고편에서만 내사과 소속 엘리트 경찰로 분한 공효진(은시연)과 염정아(윤지현), 경찰대 수석 출신 뺑소니 전담반 리더 전혜진(우계장) 등 여성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질 뿐이다.

세 명의 여성 배우 가운데 그나마 감초역이라도 차지한 것은 전혜진뿐이다. 공효진은 주인공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 내내 인상 쓰기, 짜증내기에 이어 정작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꼼작 않거나 헛손질하는 모습으로 주인공이라기보다 X맨에 가까운 활약을 보여준다.

◇웃음 폭탄+시원한 액션 vs 오로지 카체이싱=앞에서도 누누이 말했지만 ‘극한직업’은 코미디다. 웃기려고 만든 영화답게 5분에 한 번씩은 관객들을 ‘빵’ 터지게 만든다. 마지막 부두신에서는 무에타이·유도 등 무술 고수로 나오는 마약반의 본격적인 활동으로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이 폭발해 10년 묵은 체증까지 내려 보내는 효과를 전해준다.

‘극한직업’ 후기를 둘러보면 유독 “음향효과가 좋았다”는 말이 많다. 장면에 따라 쿵쿵, 짝짝, 치익치익 등 단순한 음향 표현을 넘어서 마치 요리 프로그램에서나 들을 법한 찰진 소리 표현은 물론이고 영웅본색 OST까지 사용해 장면 극대화 효과를 제대로 살려냈다.

요리 장면과 똑같은 카메라 앵글이나 쓸데없이 고퀄리티로 움직이는 배달 장면 등은 의외성으로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로 시작하는 류승룡의 수원 왕갈비 통닭 소개 멘트는 한 순간도 흘려 넘기지 않는 깨알 웃음 바이러스를 관객에 퍼뜨린다.

‘뺑반’은 처음도 마지막도 오로지 카체이싱이다. 시작이 조정석의 뺑소니로 시작되지만 의외로 영화에서 차가 부서지는 장면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류준열과 조정석이 도로의 차를 요리조리 피하며 펼치는 스릴만점 카체이싱과 트랙에서 펼쳐지는 질주다.

차에 시동이 걸리는 ‘부릉’ 소리가 심장을 떨리게 한다면 ‘부앙~’하고 차가 질주하는 소리는 박진감 넘치는 카체이싱 장면을 만들었다. ‘뺑반’에서 관객들은 다른 건 몰라도 할리우드급 카체이싱 장면은 마음껏 감상 할 수 있다. 우리 영화 기술이 한 뼘 더 성장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진=영화 ‘뺑반’>

◇한국 영화 침체기 넘는 방법은 ‘극한직업’처럼 작품성 살리기뿐=‘뺑반’은 400만명으로 예상되는 손익분기점을 돌파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개봉 10일째인 8일 기준 누적관객수 150만명을 넘었지만 입소문이 좋지 않아 극장을 찾는 관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은 예매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뺑반’은 8일 오후 5시 기준 예매율 3.9%로 4위를 기록했다. 같은 시각 ‘극한직업’은 예매율 52.3%로 독보적 1위를 기록했다. 5일 개봉한 ‘알리타: 배틀 엔젤’과 1월 30일 개봉한 ‘드래곤 길들이기3’도 각각 예매율 19.1%로 2위, 6.1%로 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월 △‘염력’(130억원/약 99만명)을 시작으로 △‘인랑’(160억원/약 89만명) △‘물괴’(125억원/약 72만명) △‘명당’(120억원/약 208만명) △‘협상’(115억원/약 195만명) △‘창궐’(170억원/약 159만명) △‘마약왕’(165억원/약 186만명) △‘스윙키즈’(153억원/약 145만명) △‘PMC: 더 벙커’(150억원/약 166만명) 등 제작비 100억원을 넘기는 대작들이 흥행 참패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대작 부진은 스타 마케팅 및 볼거리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뺑반’의 흥행 부진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공효진·류준열·조정석 등 흥행 배우와 카체이싱이란 볼거리만으로는 높아진 관객 눈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한국 영화계 장기 침체 사슬을 끊는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내구성을 갖춘 단단한 한편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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