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할리데이비슨 공식 홈페이지>

[이뉴스투데이 윤진웅 기자] 선글라스와 가죽 재킷, 말밥굽 소리가 나는 배기음. 여기까지만 봐도 어떤 브랜드를 말하는 지 누구나 짐작이 가능하다. 바로 할리데이비슨이다.

국내 바이크 시장에서 할리데이비슨의 입지는 다른 수입 브랜드와 비교해 독보적이다. 전통적인 프레임과 최신 기술이 조화를 이룬 외관을 비롯해 V형 엔진에서 나오는 말발굽과도 같은 진동감은 할리데이비슨의 전매특허가 됐다.

웅장한 배기음 소리에 사람들은 “할리데이비슨”이라고 반응한다. 가죽재킷과 부츠를 봐도 할리데이비슨을 떠올린다. 할리데이비슨의 이미지는 그만큼 견고하다.

또한 터프가이의 대명사로 불리는 배우 최민수도 할리데이비슨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지며 할리데이비슨은 이른바 ‘상남자의 바이크’로 자리매김했다.

◇ 할리데이비슨, 창립자의 성을 합쳐 탄생하다
할리데이비슨은 1903년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탄생했다. 창립자인 윌리엄 S. 할리(William S. Harley)와 아더 데이비슨(Arthur Davidson)은 두 사람의 성을 합쳐 회사명을 '할리데이비슨 모터 컴퍼니'로 명명했다.

이들은 '최고 모터사이클을 만든다'는 창업정신 아래 창업 후 6년 뒤인 1909년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상징인 V자 형태의 '브이트윈 엔진'을 개발했다.

세계 1·2차 대전 시기에는 품질을 인정받아 군사용으로 쓰이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 할리데이비슨의 위기 그리고 재도약
승승장구하던 할리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1950년대 여러 모터사이클 업체가 저렴하고 우수한 성능의 바이크를 선보이자 할리데이비슨은 첫 위기를 맞이했다. 이어 혼다와 야마하 등 일본 업체들이 1960년대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할리데이비슨은 미국 레저 용품 회사인 AMF와 합병하고 소형 모터사이클 개발에 나섰다. 혼다와 야마하의 소형 모터사이클과 경쟁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품질은 떨어졌고 소비자들은 외면했다. 결국 1975년 70%에 달하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은 6년 만에 10%로 떨어졌다.

할리데이비슨 임원들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들은 1981년 할리데이비슨 모터 컴퍼니를 AMF로부터 매입해 독립시키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84년 할리데이비슨은 이전 엔진의 결함을 크게 개선한 ‘에볼루션’ 엔진을 제작하면서 수요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에 주문이 크게 늘었지만 할리데이비슨은 판매량을 급하게 늘리지 않고 '프리미엄 전략'을 사용했다.

수요자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할리데이비슨은 1986년부터 2006년까지 21년 연속 최대 매출 기록을 경신했다. 2000년에는 과거 할리데이비슨에 위기를 안겨준 혼다와 야마하를 제치고 세계 1위 모터사이클 제조업체 자리를 탈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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