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보다 빨라졌지만 명절에 고향 가는 길은 여전히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 사진은 ‘스타트렉:비욘드’ 중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설이나 추석이 되면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전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그나마 1980~90년대 고속도로에서 16시간 넘게 보내면서 고향으로 향하던 것에 비하면 7~8시간에 걸쳐 고향으로 향하는 지금은 “세상 좋아졌다”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그런데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인의 ‘빨리빨리’ 본능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일까. 우리는 고향으로 가는 시간을 더 줄이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된다.

때로 영화는 고향으로 향하는 우리 마음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탑승 가능한 드론이나 나는 자동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DC코믹스의 ‘플래시’나 마블의 ‘퀵실버’처럼 빛보다 빠른 속도로 고향까지 뛰어가길 원한다. 가장 멋지게 고향으로 가는 건 역시 아이언맨 수트나 슈퍼맨 비행능력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엉뚱한 상상의 끝에는 “고향까지 순간이동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다. 이것저것 준비할 필요 없이 순간이동 하나로 내 집 안방에서 고향집 안방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순간이동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스타트렉’의 순간이동 장치가 있다. ‘스타트렉’에서 순간이동은 여러 방법으로 쓰인다. 우주선 안에서 행성으로 몇 명의 사람을 보내는 장치가 있고 워프 드라이브를 통해 머나먼 우주를 한 순간에 주파하는 방법도 있다.

고향이 우주에 있진 않으니 워프 드라이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고향집까지만 순간이동 하는 것이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순간이동은 SF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사람이나 물질처럼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순간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존재는 입자와 에너지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이는 불가능하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스타트렉’같은 순간이동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플라이’는 조금은 현실적인 순간이동을 보여준다. ‘스타트렉’이 5G 무선통신이라면 ‘플라이’는 구리선 유선통신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플라이’의 원리는 하나의 전송기에서 물질을 입자로 나눈 다음 다른 전송기에 보내면 컴퓨터가 이를 다시 결합해 물질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지만 ‘스타트렉’처럼 먼 거리를 향하는 것보다는 조금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그러나 ‘플라이’는 물질 전송기 안에 파리 한 마리가 들어가면서 주인공 세드(제프 골드브럼)와 파리 유전자가 결합해 끔찍한 괴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 이 역시 무시무시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지금 이 글은 ‘고향까지 순간이동’이 가능한지 묻는 글이기 때문에 거실에서 내 방으로 가는 수준의 순간이동은 접어두기로 하자.

앞서 ‘스타트렉’을 이야기하면서 ‘워프 드라이브’를 이야기했다. 이는 완전 사라졌다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순간이동과는 맥락이 다를 수 있다. 수광년이 걸릴 수 있는 먼 거리를 몇 분만에 주파하는 것으로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을 말한다.

고향이 다른 행성에 있다면 웜홀이라도 타겠지만 안타깝게도 고향은 같은 지구에 있다. 사진은 ‘인터스텔라’ 중 한 장면.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물리적 거리를 단축시키는 것은 ‘인터스텔라’에서도 등장한다. ‘인터스텔라’는 우주 한 곳에 웜홀이 관측되면서 이곳을 통해 지구에 물리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먼 우주로 떠나는 이야기다.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인 ‘웜홀’은 과학계에서 ‘순간이동의 통로’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바탕에 깔려있고 영국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을 통해 블랙홀과 유사한 것이 관측됐다.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존재와 함께 빛을 뱉어내는 화이트홀에 대한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화이트홀 존재 여부에 대해 불확실한 주장이 제기되는 만큼 웜홀 역시 존재 여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글은 ‘고향까지 순간이동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글이다. 이쯤 되면 “내 방문 밖에서 고향집 문 앞까지 웜홀을 만들어야 하나”를 따지게 될 것이다.

순간이동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 앞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는 “Anything Goes!(뭐든지 좋다)”고 했다. 과학 발전은 패러다임이나 원칙이 아니라 불가능한 상상을 하고 그것을 실현에 옮기는데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순간이동’도 계속 꿈꾸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한 날이 올 지도 모른다.

1980년대에 비하면 자동차는 훨씬 쾌적해졌고 기차는 빨라졌다. 카 인포테인먼트가 발달하면 장거리 운행도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완전 자율주행차라도 등장하면 장거리 운전의 피로도 덜 수 있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과학은 우리의 고향 가는 길을 더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었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지루할 틈 없이 고향에 도착해 가족들과 만날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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