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는 사실 하나, 좋은 국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도 먹고사는 나라이다. 한국 사회가 이 불변의 국가 존립 명제를 자영업 시장에 적용해본 적은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내키지 않은데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뛰어드는 게 이 땅의 자영업이기 때문이다. “나 경찰 아니고 치킨 집 아저씨다. 소상공인들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고”, 요즘 극장가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 ‘극한 직업’의 배우 류승룡의 영화 속 대사이다. 최근 20년 넘게 다니던 직장에서 떠밀리듯 명퇴를 한 오랜 친구도 그렇다. 대학 졸업도 시키지 못한 아들에 대한 부모로서의 부채의식에 고육지책으로 목숨 걸고 편의점을 냈다.

가맹본사가 임차료와 인테리어 비용 등을 부담하는 위탁가맹점 계약이었다. 이익이 나면 50%를 본사가 가져가는 대신, 적자가 나도 월 400만 원은 맞춰준다고 했다. 전기세와 카드 수수료 등을 제외하면 월 300만 원은 떨어진다고 했다. 본사의 말을 믿고 어렵지만 아끼고 살면 아들 학비와 먹고는 살겠다 싶었다.

인건비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영업을 시작하면서 실상은 다르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다. 가게는 24시간 숨 가쁘게 돌아갔다. 집안의 경조사는 물론 아프다는 이유로 문을 닫을 수도 없었다. 물건을 받아 나르고, 좁은 창고에 정리하고, 계산하는 일을 24시간 홀로 할 수가 없었다. 급기야는 아내까지 나섰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부부의 노동력 외에는 사람 쓰기가 버거웠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려 해도 야간에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1.5배의 인건비를 더 지급해야 하니 대략난감이었다.

부부의 고민은 날로 깊어갔으나 숙련된 기술도 체력도 따라주지 않는 50대의 삶에서 달리 방도가 없었다. 노동의 강도에 비해 수익은 가맹본사의 약속과 달리 턱없이 적었다. 이제 친구의 편의점은 새벽 2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심야에 불 꺼진 동네 편의점, 저간의 사정이 이해되었다. 편의점은 생계형 자영업으로는 서늘하고 엄혹했다.

언제부터인가 골목 어귀의 동네 점방들은 편의점이란 간판을 달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우후죽순처럼 그 수는 늘어나 자영업의 대표 업종으로 위치했다. 그러나 시장은 포화상태이고 치열한 매출경쟁에 놓여 져 있다. 편의점 시장의 막차를 탄 이들은 친구만이 아닐 것이다. 편의점 점주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타의 자영업이 그러하듯이 그 선택은 인건비이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지 않고 친구부부처럼 점주가 직접 판매에 나서는 경우가 그렇다. 다시 무언가를 채비하기엔 호흡이 가파른 중장년층에겐 목숨 걸고 차린 편의점이지만 결기만큼 내수시장은 호응하지 않았고 유지하기도 포기하기도 쉽지 않은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하긴 자영업의 고난이 어디 편의점뿐이겠는가.

편의점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편의점 가맹본사는 개별 점포 수익이 얼마가 되든지 간에 점포 문만 열면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였다. 그래서인지 기하급수적으로 점포 수 늘리기에만 몰두하는 문어발 식 형태였다. 점포 하나를 개설하면 본사는 점주로부터 가맹비와 매출에 따른 배분 수익금, 물건 유통마진, 물건 제조사로부터 받는 장려금 등 고정 수입이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임금 인상의 여파는 인건비 외적인 부분에서도 편의점 점주들에게 가시화되었다. 가맹본사로부터 지급받는 편의점 물품 가격 역시 올랐고 고객의 소비를 유도하던 프로모션은 줄었다. 편의점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공장의 인건비 인상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친구의 편의점 길 건너에 또 다른 편의점까지 들어섰다며 그는 한숨을 내쉰다. 제로섬 게임의 전형이었다. 간판이 들어설 때, 경쟁자이지만 그가 겪을 동병상련의 고초를 생각하니 뜯어말리고 싶다고도 했다.

친구의 경우처럼 편의점 매장이 이렇게 거리 제한까지 없이 늘어나게 된 데에는 지난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편의점 업종 모범규준을 폐지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기존에는 브랜드가 다른 편의점이라도 250m 거리 내에서는 신규 편의점을 열 수 없었다. 과도한 영업경쟁을 방지하고 점포의 최소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거리 제한을 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기업 경영활동을 제약한다는 이유로 지난 정부 때 폐지되었다. 이후 편의점 점포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자유 시장 질서의 미명하에 자영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린 대표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우리 공무원들 민생현장 참 모른다.

친구처럼 경제활동인구 중 자영업에 의존하는 고용 비중이 25%를 넘어섰다. 가까운 일본의 두 배에 달한다. 2017년 말 현재 자영업자는 568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1.3%에 이른다. 그 규모가 실로 놀랍다. 그 수 또한 OECD 평균인 13.2%를 훨씬 상회한다.

더 큰 문제는 성장을 중시하는 기업형 자영업보다는 영세한 생계형 자영업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폐업 또한 빛의 속도로 이루어져서 자영업이 은퇴자의 무덤이라는 통설은 확고한 진실로 자리 잡았다. 자영업으로 먹고사는 일이 쉽지 않은 나라가 된지 오래이다.

또 하나의 틀림없는 사실 하나, 이 땅의 자영업에 종사하는 국민들은 우리 노동시장이 끌어안지 못한, 보이지 않는, 그래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유령 노동자들이다. 돌아보면 허리가 휘는 임대료와 세금, 나아가 카드 수수료의 압박을 버텨내면서 각자도생해온 것이 자영업의 역사 아니던가. 사실 최저임금 올려도 그 인상분은 임대료 등으로 건물주들에게 돌아가지 편의점이나 동네 식당에서의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다. 정부의 선한 의도대로 최저임금 인상이 내수 소비로 이어져 자영업과 실물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영업자들에게 허탈한 정책으로 밖에 비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시장 현실이다.

편의점 노동자를 위해서도 변명하나 하자. 편의점은 시간제 노동자의 메카가 된지 오래이다. 일주일에 36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시간제 노동자, 일명 아르바이트생이 가장 많은 일터이다. 아르바이트생은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다. 올해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 얼마냐에 따라 이들의 급여도 달라지는 것이다. 소득 주도의 성장을 통해 내수를 진작한다는 것은 가늠하기 힘든 정책이다.

그래서 시대를 떠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려왔다. 작금의 우리 현실을 보라. 청년고용은 빙하기이며 나라의 집값은 여전히 비상식적이다. 결혼과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이 매년 늘고 있다. 정부의 의도대로 젊은 세대에게 임금 몇 푼 더 준다고 해서 나아질 수 없는 경제 현실이다. 단순히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통계 중심의 시각에서 양질의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거시적 시각으로 고용전략이 수립돼야 하는 이유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공공부분 일자리를 확충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고용은 시장에서 이뤄진다. 나랏돈으로 이뤄지는 고용은 그 예후가 좋지 않다. 우린 역사적으로 이미 많은 사례를 목도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자영업의 공존을 위한 상생정책은 과제가 아닌 실천의 문제가 되었다. 자영업 점주들만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규정화하고 가맹본사 측의 공정거래와 이익 공유, 상생발전의 법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일자리가 없어 창업으로 내몰리지 않는 고용구조를 만드는 일, 포화상태인 자영업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생계가 가능하도록 맞춤형 일자리 복지를 확대하는 일, 영세한 자영업에 노후가 불안정한 국민들을 위한 연금제도를 더욱 확충하는 일,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만큼, 국책사업 예타 면제의 속도만큼, 현 정부가 시급히 해야 될 일이다.

틀림없는 또 하나의 사실, 자영업을 하는 국민들이 먹고살기 힘들면 그 정부가 제일 나쁜 정부다. 그 사실은 자영업에 목숨 거는 국민이 먼저 안다.

前 노사정위원회 위원
前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現 중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現 이뉴스투데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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