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인 24살 청년 김용균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19세 김군이 홀로 승강장 안전문을 고치다 기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여 사망한지 2년 반이 지나 또다시 벌어진 참사다. 청년 김용균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전기 노동자였지만 세상 가장 어두운 곳에서 떠났다. 아무리 사고가 나도 원청이 책임지지 않는 이상 이 같은 사고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침묵은 길었다. 어둠도 길었다.

지난 11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잘 사는 포용 국가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며 우리 정부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꿔야 한다. 사회안전망과 복지 안에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고,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도 했다. 과연 그런가. 대통령의 선언은 제대로, 온전하게 지켜지고 있는가.

24살 청년 김용균의 사망은 하청 구조에 기댄 이윤의 극대화에서 비롯됐다. 대통령이 말한 포용 국가와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한국서부발전 소속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작업을 하던 청년 김용균은 한국서부발전 노동자가 아닌 이른바 ‘프로젝트 계약직’이었다. 한국서부발전이 하청을 준 한국발전기술 소속이었다. 2017년 기준, 발전 5사의 정규직은 1만 2000여명인 반면에 청년 김용균과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8000명가량이다. 대한민국 노동자 열 가운데 넷이 비정규직인 현실과 맞닿아 있다. 절반에 가까운 발전노동자가 이렇듯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안전 사각시대에 구겨지듯 내몰려 있다. 최근 5년간 발생한 발전소 안전사고의 97%인 337건의 사고 희생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였음이 이를 입증한다. 힘들고 위험한 업무는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이었음을 말해준다.

청년 김용균은 그 위험한 일은 왜 2인 1조로 할 수 없었으며, 한국서부발전은 컨베이어 벨트 점검 인력을 직접 충원하지 않고 하청을 주었을까. 같은 일을 더 싼값에 인력을 고용하고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는 ‘이윤’ 위주 정책의 결과라 비난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증표는 있다. 한국발전기술은 매각되던 2014년 당시 매출 433억원에서 2017년 765억원으로 43.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1억원에서 1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 세상 수많은 청년 ‘김용균’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한 서늘한 이윤이었다.

청년 김용균이 세상을 떠나기 전 받은 월급은 기본급 165만원 정도이며 휴일과 야간에도 일해 추가 수당을 받으면 200여만원 남짓 된다. 그에 반해 한국서부발전 정규직 1년차 평균 월급은 340만4666원이다. 비정규직은 20년 차가 365만 5477원이니 20년 일해도 하청 노동자가 받는 급여는 원청 신입사원 수준인 것이다. 정규직은 지난해 상여금으로 1253만4000원을 더 받았다. 이런 억장이 무너질 모순된 현실 앞에 청년 김용균은 분노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서울에 상경해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절박한 나의 얘기 좀 들어달라고 손 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다. 24살 열정의 비장했던 그의 눈은 이제 영원히 감겼다. 언론 속 그의 사진을 다시 보며 가슴이 먹먹하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가슴이 처연하다. 그러나 이 땅의 청년 김용균은 아직 태산이며 그들의 절규는 현재 진행형이다.

“더 이상 이런 일이 없기를” 반복하는 한탄은 이제 부질없다. 막연하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부르짖는 것도 권태롭다. 세상과 이별한 김용균의 사진 속 눈망울을 다시 들여다보면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올해 8월 15일 발전노조 태안화력지부의 성명서에는 “ 발전사 협력업체 노동자가 서부발전에 들어온다면 좋은 일자리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고 이는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숨통을 열어주는 길입니다”고 주장했다. 그 여름의 성명서를 이 시린 겨울에 다시 읽고 되뇐다. 그때 함께 살았더라면.

또 다른 청년 김용균이 없도록 사회적 반성은 아직 여물지 않았다. 그 절절한 성찰의 토대 위에 함께 살자는 배려가 넘실거려야 한다. 행복과 비판의 차이를 넘어 삶과 죽음을 가르고 있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보수와 진보가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19살 김 군이 꽃다운 목숨을 잃고 제도 개혁을 약속한 지 2년 반이 지났는데도 국회는 그동안 무얼 했단 말인가. 또 다른 김용균이었을 발전소 어느 하청 노동자는 사고 소식을 전하며 “정규직 안 해도 좋으니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울먹였다. 국회의 태만이 또 꽃 같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국회는 지금 ‘위험의 외주화’를 ‘당략의 외주화’로 치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청년 김용균은, 구의역 김군은 애절하게 묻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김혜수는 구제금융의 조건을 내거는 IMF 총재 뱅상 카셀을 향해 ‘구제 금융을 이유로 한 나라의 경제적 자율성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고 일갈한다. 숱한 세월이 흐른 지금 경제적 자율성을 침해하는 무시무시한 외압들은 사라졌지만 그 외압은 숙주가 돼 우리 사회 곳곳에 자연스레 뿌리를 내렸다. 청년 김용균과 구의역 김군의 죽음은 그 처연한 결과이다.

사람들이여, 더 늦기 전에 우리 함께 살자.

前 노사정위원회 위원
前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現 중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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