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월 1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제로(zero) 캠페인'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제원 기자] #1. 광주에 사는 A씨는 지난 10월 모 저축은행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저축은행 직원은 "기존 저축은행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 주겠다" 며 A씨의 휴대폰에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사기범이었다. 이후 A씨는 대출 진행 경과 확인 차 해당 저축은행에 몇 차례 전화를 했으나 앱에 심어진 악성코드 탓에 전화는 매번 사기범에게 연결됐다. 사기범은 전환 대출이 거절돼 업무 처리에 필요하다는 핑계로 A씨에게 500만원을 요구했고 저금리를 기대하던 그는 돈을 입금했다. 이어 사기범은 대출 이자 감면을 위해 금융감독원에 공탁금을 예치해야 한다며 350만원을 추가로 받고 허위의 금감원 공문까지 찍어 A씨의 문자로 보냈다. 뒤늦게 악성앱에 감염돼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A씨. 하지만 돈은 이미 사기범에게 인출된 후였다.

#2. 경기도 파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B씨. 전용은행에서 본인의 계좌로 5000만원이 입금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보고 의아해 하는 도중 낯선 남자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본인의 실수로 입금을 잘못 했다"며 "알려주는 계좌로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별다른 의심 없이 송금한 B씨는 얼마 후 집으로 대출과 이자납부 통지서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경찰서에 신고 후 알게 된 사실, B씨의 통장에 입금됐던 5000만원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B씨의 명의로 대출을 받은 돈이었던 것이다. 결국 본인돈을 사기범한테 건네주게 된 것. 후회해봤자 엎질러진 물이었다.

금융당국이 나날이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규모는 1802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보다 73.7% 증가했다. 매일같이 116명의 피해자가 10억원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보이스피싱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의 심리를 악용해 저금리 대출을 해주겠다며 수수료 등을 챙기는 '대출 빙자형', 검·경이나 금감원 등을 사칭해 돈을 가르치는 '정부 기관 사칭형' 등이 대표적이다.

가짜 금감원 공문<제공=금감원 광주·전남지원>

최근에는 악성코드가 심어진 앱을 휴대폰에 설치하도록 유도해 금감원 등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면 사기범에게 연결되도록 하는 수법도 생겼다.

여기에 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등 SNS 대화창에서 지인을 사칭하거나 결제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등 신종 기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가짜 결제 메시지<제공=금감원 광주·전남지원>

특히 20~30대 청년층이 60대 이상 노년층보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더 많이 당한 것으로 조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보이스피싱을 원천 봉쇄하고자 시스템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월 1일 '보이스피싱 제로 캠페인' 발족식에서 "2011년부터 보이스피싱을 예방해 사기 피해가 감소했지만 지난해부터 보이스 피싱 사기 피해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며 "금융회사가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금융당국도 피해예방 홍보를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은행은 금감원·한국정보화진흥원과 내년 1월 완료를 목표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탐지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에 나섰다. 이 앱을 휴대폰에 설치하면 인공지능(AI) 시스템이 통화내용을 실시간 분석해 보이스피싱 확률이 일정 수준 이상일 경우 사용자에게 경고한다.

금감원은 탐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신고·제보받은 보이스피싱 사례 8200여건을 제공, AI의 '딥러닝'에 사용한다. 금감원의 보이스피싱 사례는 지속적인 기계 학습(딥러닝)을 통해 탐지 정확도를 높이는 역할을 맡는다. 이 앱은 삼성전자가 갤럭시 시리즈 단말에 담을 보이스피싱 차단 앱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금감원은 KB국민은행, 아마존웹서비스와 공동으로 스미싱 사기를 판별하는 AI 알고리즘을 개발에 성공했다.

스미싱이란 문자메시지(SMS)와 피싱(Phishing·개인 정보 이용 사기)의 합성어다. 휴대폰 문자로 인터넷 주소를 보내고 이용자가 클릭해서 접속하면 악성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 정보를 빼내거나 상대방을 속여 돈을 가로채는 금융 사기다.

스미싱 판별 AI를 활용한 스미싱 차단 앱을 스마트폰에 깔면 AI가 스미싱 사기로 의심되는 문자메시지에는 경고 표시를 해 이용자가 주의할 수 있게 도와준다.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예방 방법도 조언했다.

지연 이체 서비스를 미리 신청해놓으면 사기범에게 속아서 돈을 보냈더라도 최소 3시간 이후에 받는 사람 계좌에 입금되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나기 전에 취소할 수 있다.

지연이체 개념도<제공=금융감독원>

또 안심 통장이라 불리는 입금계좌 지정 서비스는 본인이 미리 지정한 계좌로는 자유롭게 송금이 가능하지만 지정하지 않은 계좌로는 소액 송금만 가능(1일 100만원 이내)하다. 계좌 비밀번호, 보안카드 일련번호 등 정보유출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피해액을 줄일 수 있다.

해외 IP 차단 서비스는 국내에서 사용하는 IP 대역이 아니면 인터넷 뱅킹이 안 되게 하는 서비스다. 정보유출이나 해킹 등으로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해외에서 시도하는 금전인출을 방지한다.

단말기 지정 서비스도 있다. 본인이 미리 지정한 PC나 스마트폰(최대 5대까지 지정 가능) 등에서만 이체 등 주요 거래가 가능하다.

지정하지 않은 단말로는 조회만 가능하며 이체 등 거래를 위해서는 추가 인증을 거쳐야 하기때문에 정보유출 등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가짜 금감원 홈페이지<제공=금감원 광주·전남지원>

개인 정보노출자 사고예방시스템은 개인정보가 노출된 금융소비자가 금감원 금융소비자정보 포털 '파인'에 개인정보 노출 사실을 등록하면 신규계좌 개설이나 신용카드 발급 등을 할 때 본인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명의도용이 의심되면 거래를 제한하는 시스템이다.

이 밖에도 스마트폰에 T전화나 후후, 후스콜 등과 같은 스팸 차단 앱을 설치하면 보이스피싱 여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추가 피해가 걱정되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주민등록지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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