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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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의 정치학
  • 이현수
  • 승인 2018.12.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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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습관처럼 일주일에 한 번은 공중목욕탕을 찾게 된다. 세상사,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뜨거운 탕에 앉아있다 보면 이내 몸도 마음도 무장해제가 된다. 동행한 친구와 나누고 싶던 말들은 따뜻한 온탕의 열기와 섞여 적당한 온도로 서로에게 전달된다. 관계의 공감에 있어서는 군더더기 없는 태도의 대화가 있기에 참으로 유효한 공중목욕탕이다.

공중목욕탕의 역사는 유구하다. 목욕 문화의 전성기는 고대 그리스지만 만개한 시기는 고대 로마이다. 요즘에야 먹거리 놀 거리 가득한 찜질방이 천지지만 목욕탕을 놀이공간으로 발전시킨 것은 고대 로마인들이 시초였다. 가까운 일본은 천혜의 자원인 온천과 접목한 노천탕의 목욕 문화를 일찍이 즐겼고, 아랍인은 척박한 모래바람 속에 장거리 무역과 유목문화에서 오는 피로를 풀기 위해 ‘하맘’ 목욕 문화를 발전시켰다.

우리의 경우, 은밀하고 개인적인 행위로 치부되었던 ‘목간’이라 불린 목욕 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목욕이 습관화된 일본은 청결과 위생을 내세워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게 당연시되던 조선인들의 기강 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그 저의는 불순했다.

국민 건강을 위해 개화파 지식인들도 목욕을 중요시했다. 이른바 목욕 르네상스였다. 종로통에서 막걸리라도 마셔본 이들이라면 골목골목에서 낡고 작은 동네목욕탕의 과거 흔적을 마주할 수 있다. 그랬던 공중목욕탕이 화려했던 그 명성을 찜질방에 빼앗긴 것은 2000년 대 부터였다. 찜질방과 사우나라는 이름으로 대세를 이룬 목욕탕들은 식당과 노래방은 물론 놀이기구까지 갖춘 채 그 몸짓을 키워갔고 순식간에 목욕탕의 주류를 차지해 버렸다. 목욕 후 먹는 바나나 우유가 휘황찬란한 패스트푸드로 대체된 것도 그 시기였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의 목욕 역사는 성찰의 불교문화와 잇닿아 있다. 자기 몸을 씻는 목욕이 종교의식으로 승화되어 신라시대에는 목욕재계를 계율로서 옹립하였으며,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죄수에게는 목욕 벌을 내리기도 했다. 고려 시대에는 ‘돌아봄을 위해 하루에 서너 차례 목욕을 했다’고 ‘고려도경’에 전해진다. 조선시대 목욕 풍속은 유교사상에 기반하여 자신의 허물을 닦아내며 위생을 중시한 ‘부분 목욕 문화’가 발달한 시기였다. 이렇듯 시대와 종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 우리의 목욕 문화는 단순히 몸을 청결히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시대는 달라도 목욕은 엄숙하고 진중한 성찰의 도구였다. 마음의 때를 벗기는 의식행위였던 것이다.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지하 2층에는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간이 있다. ‘건강관리실’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일반인과 보좌진은 이용할 수 없는 국회의원 전용 목욕탕이다. 의원 목욕탕은 17대 국회 전반기까지는 연회비를 받았지만 지금의 20대 국회에선 무료다. 1995년 문을 연 뒤 개·보수를 자주 하지 않아 시설은 아직 낡은 편이다.

특히 샤워기의 수압이 낮아 불편함을 호소하는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도 30년 된 낡은 고향집 아파트에서 받았던 수압 스트레스가 있었기에 그 고충에 공감백배다. 로마시대 목욕탕이 그랬듯이 국회의원회관의 의원 목욕탕은 여야 의원들 간의 ‘물밑 대화’의 장이 되기도 한다. 목욕탕이 또 다른 정치적 공간으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알몸’으로 상대방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니 그 얼마나 정직한가. 이곳에서만큼은 여야도 계파도 없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사치스럽고 퇴폐적인 목욕 문화 때문에 로마가 망했다고 한다. 로마인의 목욕 사랑은 유별났다. 목욕을 사회적 미덕으로 여겨 즐긴 것은 그리스로부터 이어받은 것이지만 로마 시대에 이르면 목욕탕은 그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

드넓은 토지에 노천탕과 화려한 정원에 도서관, 회의실, 간이식당까지 두루 갖춘 목욕탕에서 로마의 정치인들은 은밀한 거래를 하며 흥청망청 먹고 마셨다. 주지하다시피 그 결과는 참혹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의 의원회관 목욕탕은 로마의 목욕탕과 달리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며 퇴폐적이지도 않고 목욕탕의 절대가치라 여기는 샤워기의 수압도 약하다. 그러니 의원회관 목욕탕 때문에 나라 망할 일은 없겠다. 소탈한 시설이기에 특권이라 칭하기에도 무리이다.

인간의 깨끗함에 대한 태도는 내밀한 자아에 관해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현대를 넘나들며 목욕이라는 일상이 역사와 어떻게 소통해 왔는지 보여준다. 무엇이 깨끗한 것인지는 과거에 그랬듯 지금과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가공되지 않는 민낯으로 실오라기 한 점 걸치지 않은 채, 의견이 다른 이와 담백한 교감을 이루는데 로마처럼 휘황찬란한 목욕탕이 뭔 필요가 있으랴. 서늘한 진영논리를 뒤로하고 진심 어린 소통을 할 수 있다면 의원회관 목욕탕의 온탕에 마주 앉아 정직한 속내를 드러내며 대화를 나눠야 한다. 날로 피폐해지는 민생경제 앞에 더더욱 그래야 할 시기이다. 선조들의 목욕이 성찰의 수단이었듯이.

前 노사정위원회 위원
前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現 중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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