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전문변호사의 tip] #1. 증거 없는 성범죄, 진술의 신빙성이 사건의 흐름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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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전문변호사의 tip] #1. 증거 없는 성범죄, 진술의 신빙성이 사건의 흐름을 결정한다
  • 이현중
  • 승인 2018.12.11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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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는 늘 심각한 사회문제다. 요즘에는 특히 디지털 성범죄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그 피해가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법적·제도적인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또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호소할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이다. 본지는 형사전문변호사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짚어보면서 법률, 판례, 사례 등을 함께 다루며 정확한 법률 정보를 전달하고자 한다.

남녀 간의 성관계는 양날의 검이다.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서로간의 동의가 없이 이루어졌다면 명백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특히 성범죄는 일반적인 범죄에 비하여 그 죄질이 나쁘다고 인정되며, 형벌 이외에도 많은 사회적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으므로 그 차이는 더욱 크다.

사랑과 범죄 사이를 가르는 기준은 성관계에 대한 동의가 있었느냐의 여부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였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강제로 성관계를 하게 되었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이 상황을 실제로 직접 본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결국 사건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범죄피해자의 진술은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 직접증거로서의 자격이 있다. 그러한 진술만으로도 가해자를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피해자의 진술을 믿을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그 진술의 증거로서의 가치는 떨어지게 되고, 그러한 진술만으로 가해자를 유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된 ‘진술의 가치’에 대한 평가의 방법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한 사람의 진술이 A라고 이루어졌다가 A가 아니었다고 번복된다면 그 진술에는 일관성이 없어 가치가 낮아진다. 어떠한 사실이 있었다는 진술이 이루어졌는데, 다른 객관적인 증거나 다른 사람의 진술은 그러한 사실이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사실과 관련된 진술은 전반적으로 믿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어떠한 진술이 이루어진 경우, ‘일반적으로’, 혹은 ‘상식에 비추어’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정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예컨대 B라는 사람이 사건 장소의 반대편 건물에 있다가 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을 목격하였다고 진술하였는데, 사건 당시에는 매우 어두운 밤이었고 다른 불빛도 없었던 상황이었다면 사건을 목격하였다는 B의 진술은 ‘상식에 비추어’ 믿기 어렵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범죄에 있어서 피해자의 진술은, 위와 같은 다양한 판단들과는 다른 구조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된다고 하였으며, ‘일반적인 피해자’의 합리적인 행동을 특정 행위만으로 한정해서는 안 되고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2018도7709).

위 사례에서는 피해자가 저항 없이 가해자와 함께 모텔로 향했다는 점, 피해자가 모텔로 가기 직전에 남편에게 ‘졸려서 먼저 자겠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던 점, 피해자가 사건 이후에도 가해자와 연락을 취했다는 점 등의 사정이 인정되었고, 이와 같은 사정들은 대부분 이전의 사례에서 ‘일반적으로’ 강간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인정된 것들이었다. 1심과 2심은 이를 근거로 강간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하여 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위 사례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남편이 출국하자마자 피해자를 만나 다른 사람들과 통화를 하면서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신변에 위해를 가할 것처럼 겁을 주었던 사정이 있었고, 피해자가 사건 당시 가해자와 만나기 전에는 모텔에 갈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다. 실제로 계속되어 온 가해자의 협박이 이어져 오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모텔에서 가해자의 요구에 제대로 저항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위와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피해자의 행동은 가해자의 범행과 양립이 가능한 사정에 불과하다는 것이었고, 대법원은 이를 근거로 원심의 판단은 잘못되었다고 보았다.

나아가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의 진술이 합리성이 없거나 그 자체로 모순되어 신빙성이 없다는 사정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따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거나, 직접증거인 피해자 진술과 결합하여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간접정황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피고인의 모순된 진술은 결국 ‘스스로의 밧줄로 스스로를 묶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취지이다.

모든 맥락에 비추어 보아도 피해자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면, 결국 피고인은 결백하다고 인정될 것이다. 하지만 피고인이 자기 나름대로 변명을 하였다가 결국 이를 번복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오히려 그 혐의는 더욱 분명해질 수도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결국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인정되는 사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오늘도 누군가가 밤을 지새워 기록을 뒤적이며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믿을 수 없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싸일 것이다.

이현중 더앤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경찰대학 법학과
-사법연수원 수료
-前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現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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