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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배의 IF] 대한민국 ‘미투’ 안녕하십니까? ‘미투 운동’이 그 목적을 이루려면

지난해 10월 미국의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가 폭로된 후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는 뜻)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1월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인사 보복까지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한국판 미투 운동이 촉발됐다. 유명 정치인, 작가, 연출가, 음악가, 배우 등에 대한 성범죄 폭로가 줄줄이 이어졌고 여론 재판이 벌어졌으며 일부는 사법부 판단으로 넘겨졌다. 성범죄 폭로는 잠잠해지고 있지만 최근 연예계에서는 엉뚱하게 유명 연예인의 가족이 과거에 채무를 갚지 않았다는, 이른바 ‘빚투’ 폭로로 이어졌다.

‘미투 운동’은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우리나라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진 배경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 직장에는 실무에 활용할 수 있는 대학 교육이 미흡해 유독 도제식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 군대 용어인 ‘사수’, ‘부사수’라는 말을 일반 기업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다. 사수가 남성이고 부사수가 여성인 경우가 많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이런 조합도 늘어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여성이 승진에서 불리한 성차별적 시스템도 원인일 것이다. 사수는 부사수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선생이기도 하고 직장 내 적응을 돕는 멘토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사수는 사수에게 의존하면서 알게 모르게 감정적으로도 억압을 받게 마련이다. 또, 수직적 조직 체계에서 사수보다 높은 상사는 파트너가 아닌 생살여탈권을 쥔 권력자로 자리 매김한다. 상사 역시 아직 남성이 많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성차별이 발생하기 쉽다. 성차별에 별다른 저항이 없으면 성희롱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더 심각한 성범죄로 이어진다. 일반 기업보다 도제식 문화와 권력 관계가 확실한 문화예술계에서 유독 미투 폭로가 많은 것도 이런 맥락에 있을 것이다.

‘미투 운동’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확실히 직장 내 분위기가 달라졌다. ‘남성 사수’와 ‘남성 상사’는 ‘여성 부사수’에게 말과 행동에 있어 훨씬 조심스러워졌다. 이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되면서 감지된 변화이기도 하지만, ‘미투 운동’이 직장 내 우월적 지위에 있는 남성들에게 더욱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일반 여성이나 여성인권단체로서는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전히 성차별은 존재하고 성범죄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아랫사람 눈치보기 힘들다’는 중년 남성들의 푸념도 아직 변화를 미처 체내화시키지 못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친 피해 의식’이라고 하는 주장도 뿌리 깊은 성차별의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은 엉뚱하게 성(性)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수역 폭행 사건’을 둘러싼 논란에 극명하게 나타났다. 초기 사실을 정확히 보려는 노력은 점차 남성과 여성이 서로 ‘한남충(한국 남자를 벌레로 비하하는 단어)’, ‘메갈녀(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를 비하하는 단어)’라고 공격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유명인의 성범죄 사건이나 이슈화된 연인 간의 다툼도 어김없이 성대결로 귀결되고 있다. 물론, 현재의 성대결이 ‘미투 운동’에서 비롯됐다는 보는 시각에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 이전에도 성대결 양상은 자주 목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수역 폭행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올해 들어 성대결 양상이 더 치열해졌다는 점에서 ‘미투 운동’의 반작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수세에 몰린 남성들의 속 좁은 반발일까. 미투 폭로 초기에는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이목을 집중시킨 다음 가해 내용에 대한 잔혹하리만치 관음증적 뉴스가 넘쳐난다. 여기서 미투 사건은 두 갈래로 진행된다. 여론으로 단죄가 이뤄지거나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때 한 가지는 확실해진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은 사회 복귀는 물론 가정에서조차 배척된다. 사회에서 배제되고 설사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더라도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는 셈이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의 고백에 신빙성이 다분히 의심돼도 마찬가지다. 백 명에 한 명, 심지어 천 명에 한 명이라도 무고(다른 원한이든, 보상을 노리는 계획이든)에 의한 가해자로 지목됐을 경우 현재로서는 어떤 구제책이 없다. 정말 성범죄인지에 대한 의심은 ‘한남충’의 생각 없는 반발로 매도되고 성대결의 장이 다시 펼쳐진다. 이를 스크린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찌됐든 이분법적 시각은 ‘미투 운동’과 그 목적인 성범죄 예방 및 성차별 해소로 진전시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미투 폭로에 대한 물타기 시도도 계속 벌어질 것이다. 성대결의 긴장감만 높일 뿐이고 더 많은 ‘한남충’을 생산할 뿐이다. 사석에서의 농담이지만 직장 내 문제의 싹을 없애겠다며 ‘여직원을 뽑지 않기로 했다’는 말도 들은 적 있다. 반대로 ‘남직원을 뽑지 않기로 했다’는 말도 나올 수 있다. 미투 폭로에 대한 의심이 끼어들 틈이 없다면 실제로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는 유무형으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서는, 정쟁에만 몰두한다며 비판받는 여의도 정치인과 하등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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