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명동 거리 모습[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제원 기자] 문재인 정부 600일이 눈앞이다. 기업과 가계가 느끼는 체감경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만큼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는 “경기가 나쁜 게 아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산업연구원·한국은행 등 많은 기관에서 올해 경제지표를 내놓고 있지만 체감경기와의 온도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지표는 그리 나쁘지 않은데 예를 들면 성장률, 수출 등은 나쁘지 않은데 일자리나 소득분배 등 체감경기가 매우 나쁘다. 구조적 요인과 경제적 요인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4일부터 21일까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오는 1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 88.7을 기록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펼쳐진 촛불시위 등으로 경기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 2월(87.7) 이후 22개월 만의 최저치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 악화를 예상하는 기업이 경기 호전을 기대하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전경련은 ‘2019년 산업 전망 세미나’에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가 내년에는 한풀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전경련은 반도체뿐 아니라 자동차와 철강, 석유화학 등 산업이 모두 부진하면서 내년에도 주력 제조업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전경련은 내년 주력 제조업 판도를 ‘3약 2중 1강’으로 점쳤다. 전자·전기만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반도체와 조선은 실적이 불투명하고 자동차·철강·석유화학은 부진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업종별로는 반도체의 경우 D램은 수급이 개선되지만 낸드플래시는 공급 과잉을 면치 못할 것으로 관측됐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위원은 “D램 현물가격이 최근 하락세를 보이지만 내년에는 신규 스마트폰 출시, 리니지2M 등 고사양 모바일 게임 출시 본격화, 프리미엄 노트북 수요 강세,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 등으로 수급 개선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그러나 “반면 낸드플래시는 공격적인 설비 증설 영향으로 2019~2021년에 걸쳐 공급 과잉이 지속할 것으로 보여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는 힘들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석유화학은 업황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응주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북미 천연가스 기반 화학설비(ECC) 신·증설 등 공급 증가 요인이 맞물리며 업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가의 하향 안정화에 따라 원료가격 부담은 줄어들 것으로 봤다.

기업 경기가 이러니 가계가 느끼는 경기가 좋을 리 없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0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2월(93.9) 이후 2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소비자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CCSI가 100보다 작으면 소비심리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의 평균적인 경기 상황보다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CCSI를 구성하는 6개 개별지수를 구체적으로 보면 현재경기판단(62)과 향후경기전망(72)은 10월보다 각각 5포인트 하락했다. 우리 경제가 예전보다 안 좋아졌고 앞으로도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이야기다.

경기가 가라앉으면 수입과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계수입전망(97)이 2포인트, 소비지출전망(108)은 3포인트 떨어진 게 이를 방증한다. 현재생활형편(90)과 생활형편전망(90)도 1포인트씩 내려갔다. 특히 생활형편전망은 2011년 3월(90) 이후 7년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택가격전망CSI(101)은 13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9월(128) 고점을 찍은 뒤 두 달 연속 급락을 면치 못했다. 9·13 부동산 대책 등 정부 대출규제 정책에 따른 주택매매거래 둔화, 시중금리 상승, 지방 집값 하락세 지속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취업과 고용에 대한 기대감도 줄줄이 떨어졌다. 이달 임금수준전망CSI(118)와 취업기회전망CSI(75)는 각각 3포인트, 4포인트 내리막길을 면치 못했다.

국내 경제기관들과 더불어 해외의 경제기관들까지 한국 경제가 침체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9월 한국의 경기선행지수(CLI)는 99.1로 전월(99.3)보다 0.2포인트 하락했다. 이 수치는 OECD 평균(99.50)보다 낮은 수준이며 미국(99.85)이나 G7(선진 7개국·99.72), 유럽연합(99.59) 등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한국의 CLI는 지난 5월 100 밑으로 내려간 이후 4개월 연속 하락했다. CLI가 100을 밑돌고 하락 추세라면 경기 수축 국면으로 평가된다.

무디스는 한국의 내년 경제 성장률은 2.3%로 올해(2.5%)보다 낮아지고 주요 20개국(G20)의 성장률은 올해 3.3%에서 내년 2.9%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무디스는 “한국은 성장하지만 성장이 둔화하고 있으며, 특히 수출부문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 며 “무역 불확실성뿐 아니라 여러 내부적 불확실성이 나타나면서 경제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장하성 정책실장이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함께한 여·야·정 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여야 원내대표들의 발언을 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만은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13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철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우리 경제가 침체 국면이 아니냐”는 질문에 “침체라는 단어를 쓰기는 조금 성급한 것 같다”며 “경기 순환상 하방압력을 조금 받는 것은 사실이나 국제적 시장환경을 볼 때 침체나 위기라는 표현을 쓸 것은 아니다”고 대답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내년에도 상당 부분 힘들 수 있겠지만 지금 경기 상황이 경기 침체나 위기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은 경제적으로 과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6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포럼’ 개회식 영상축사에서 “한국의 양적 성장 중심의 정책이 경제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김동연 부총리도 지난 9월 향후경제운영방향 발표에서 “일자리 총력전과 경제활력 제고, 경제 패러다임 변화, 거시경제 안정적 관리 틀에서 경제를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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