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구조적, 장기적 하향세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우리경제의 예측가능성 제고를 위한 컨퍼런스’가 진행됐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한국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도체에 쏠린 수출 구조와 각종 경제지표 하락 등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 하향세’ 국면인데도 이를 ‘일시적 경기하락’ 문제로 혼동하는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우리경제의 예측가능성 제고를 위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현장에는 100여명이 넘는 전문가와 기업인이 참여해 행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 김소영 서울대 교수, 이지만 연세대 교수가 참석해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의 사회로 안상훈 KDI 선임연구위원,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이성호 대한상의 SGI 신성장연구실장 등이 패널로 참여한 토론도 이어졌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현재 한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기업에게 11월은 내년도 사업 준비를 위해 경제 예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라며 “하지만 최근 미·중 무역갈등과 신흥국 금융 불안, 내수침체와 정책적 불확실성 등으로 기업의 경영시계는 흐릿한 상태”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긴 호흡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기업들도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대응해 나갈 수 있다”며 “지금 우리가 당면한 경제 현상들이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 경기 싸이클(cycle) 같은 '일시적 요인' 때문인지 구별해 보는 중장기 추세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 대응에 대해서도 “정책의 단기적인 결과도 있겠지만 우리가 만들어 온 정책의 결과가 중장기 관점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이런 중장기 예측이 가능하다고 할 때 ‘지금 내려야 할 선택’에 대해서도 좀 더 분명한 판단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박 회장은 “개별기업 차원에서 '비용변동 요인들이 예측 가능하고 수용 가능한 범위 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최저임금 이슈를 예로 들자면 ‘인상률’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예측가능성’ 문제”라며 “이는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사정에 맞춰 좀 더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경제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하향세, 단기적 하락과 구분해야 제대로 대응 가능”

이날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경제가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하향세에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최원식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는 ‘한국경제의 장기추세 진단’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맥킨지가 분석한 71개 신흥국가 중 1965년부터 2016년까지 1인당 실질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 이상인 나라는 한국, 중국, 싱가포르, 캄보디아 4개국 밖에 없지만 한국 성장률은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 대표는 이어 “잠재성장률 역시 2%대까지 하향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구조조정과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노력이 미흡한데다가 생산가능인구 감소까지 겹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 대표는 중장기 하향세를 반전시킬 물꼬로 ‘4차 산업혁명’을 꼽았다. 그는 “기업은 급변하는 환경에 적합한 애자일(agile) 조직으로 전환하고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인프라와 민관 협력 모델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자본축적에 따라 한계생산이 체감해 왔고 기술진보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세는 계속 될 것”이라며 “이런 큰 흐름 속에서 경기가 출렁이면 장기적 성장률 하락과 일시적 성장률 하락을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적 경제 환경의 변화를 놓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안상훈 KDI 선임연구위원은 “수출 중심의 성장구조에서 낙수효과가 감소함에 따라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민간과 정부의 역할을 구분해 총체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한국경제의 장기 추세 진단’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한국경제 성장률이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을 이를 반전시킬 물꼬로 꼽았다.<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 “성장·분배 달성할 투트랙(Two-Track) 정책 필요, 규제 풀어 신산업 키우고 직접적 분배정책 펴야”

성장-분배정책 간 모호성을 극복하고 명확한 투트랙(Two-track) 정책을 펴자는 주문도 나왔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경제정책 기조와 한국경제 전망’ 발표에서 “현재 한국경제는 성장여력 감소와 소득양극화(분배)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분배개선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지만 분배정책을 통해 성장을 달성하려고 하면 양자 모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경제정책을 혼용하면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 있는 만큼 성장정책과 분배정책을 명확히 구분해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장에 대해서는 “규제완화를 통한 신산업과 서비스산업 발전이 잠재성장률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정부가 디테일을 정해주기 보다는 혁신환경 조성을 통해 시장자율로 혁신이 일어나게 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의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을 높여 경제전반의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분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분배가 바람직한지 공론화를 통해 목표수준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먼저”라며 “방법론에 있어서는 시장에 주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되 목표 달성이 가능할 정도의 직접적인 분배정책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제언했다.

이성호 대한상의 SGI 신성장연구실장도 “한국경제가 지속 성장하려면 연구개발(R&D), 정보통신기술(ICT), 브랜드, 서비스혁신 등 무형자본에 대한 투자가 늘어 지식기반 경제로 전환돼야 하는데 무형투자자가 가장 기피하는 규제와 불확실성이 한국사회 곳곳에 잔존하고 있어 경제체질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무형자본 투자는 노동집약적인 동시에 조직혁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노동비용과 경직성이 증가하면 자동화설비 투자는 증가하지만 무형투자는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며 “노동시장에 개입해 분배개선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부작용을 낳기 때문에 되도록 지양하고 사회안전망 등 복지지출을 확대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 “현행 최저임금 결정방식은 변동성 예측 어려워, 산식(formula) 도입 검토해야”

최근 변동성이 높아진 최저임금의 결정방식을 산식(formula)을 활용해 산출되는 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비용변동요인의 예측·수용가능성’ 주제발표에서 “기업의 안정적 경영과 투자를 위해서는 미래 수입 및 비용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중요한데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16.4%)이 전체근로자 임금인상률(3.8%)의 4배를 넘는 등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대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저임금법상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을 고려해 노사가 협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최근의 사례를 보면 이런 기준보다는 노사협상 또는 정책적 요인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며 “단적인 예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비중은 고작 20%(총 32회 중 7회) 수준으로 현행 최저임금 결정방식이 노사갈등과 그에 따른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교수는 “최저임금법에 명기된 4가지 기준은 노사협의 시 고려사항일 뿐 지표산출과 반영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며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써 지표 항목을 재정립하고 지표별 산식(formula)을 명확하게 하는 등 최근 대한상의가 제안한 방식을 검토해 볼 만 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현재의 ‘교섭식’ 최저임금 결정방식을 영국·프랑스 등의 ‘자문식’으로 개선해 최저임금위원회 역할과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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