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차장-과장' 등 기존 직급제 호칭을 통일한 기업 사이에서 당초 우려와 달리 '수평적 분위기' 등 긍정적 기류가 흐르고 있다. 직원 호칭을 통일한 CJ그룹·아주그룹·SK텔레콤 본사.[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오늘 온리원페어 행사에 이재현 님이 참석하셨습니다.”

CJ그룹 사내에서 흘러나오는 사내방송 멘트 중 일부다. 언급된 ‘이재현 님’은 다름 아닌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다.

최근 기업들이 대대적인 조직문화 혁신에 나서면서 재계에 ‘호칭 파괴’ 열풍이 불고 있다. 도입 초기만 해도 ‘호칭 하나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수개월에서 많게는 10년 넘게 통일된 호칭을 사용한 기업 사이에서 긍정적 기류가 흐르고 있다.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건 CJ그룹이다. 2000년 1윌 ‘님’으로 호칭을 통일한 이후 올해로 18년째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CJ에서 ‘님’ 문화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데에는 이 회장 의지도 큰 역할을 했다. 이 회장은 자신을 호명할 때 ‘회장’ 대신 ‘님’을 붙이라고 직원들에게 직접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칭 통일 효과는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진다는 게 CJ 측 설명이다. 다른 부서와 협업하는 일이 많은데 상대 부서 사람이 어떤 직급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기 때문에 보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고 원하는 바를 명확히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CJ 관계자는 “다른 팀하고 일할 때는 ‘업무 대 업무’로 만나는 것인 만큼 직급이 중요하지 않다”며 “만나기 전부터 상대가 부장이나 과장 등 연차가 높다는 것을 알고 가면 괜히 더 신경 쓰게 되는데 호칭이 통일돼 있어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권위적 조직체계에서 근무하다가 수평 호칭을 사용하는 기업으로 이직한 사람도 적응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한다. 이 관계자는 “경력직으로 오신 분들은 초반에 연차가 높은 직원에게 ‘님’ 호칭을 쓰는 걸 보고 ‘저렇게 불러도 되나?’라는 식으로 조심스러워 하는 부분은 있다”면서도 “회사 내부에서는 아주 당연하고 편안하게 통일된 호칭을 쓰기 때문에 오래가지 않아 자연스레 적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주그룹도 2013년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직급 체계를 버리고 ‘매니저’로 호칭을 단일화했다. 직원 명함에도 직급을 명시하지 않고 ‘매니저’란 호칭만 새기고 있다.

아주 관계자는 “호칭을 통일한 이후 수평적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 저연차 직원들로부터 창의적인 제안도 이전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호칭도 계속 부르다 보니 자연스레 수평적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도 올 들어 ‘매니저-팀장-실장’ 등 기존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다. 2006년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할 당시에는 팀장과 임원은 제외했지만 이번에는 모두 포함했다. SK텔레콤 측은 동등한 관계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얼굴은 모르는 다른 부서 직원과 협업할 때 기존에는 ‘OO부장님, 저는 OO대리인데 OO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라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며 “지금은 ‘OO님, 저는 OO인데 OO가 필요합니다’처럼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바를 명확히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회의적인 주장도 나온다. 호칭이 통일되면 승진에 따른 직원 동기부여가 사라지고 거래처 등에도 혼선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KT는 이석채 전 회장 시절인 2010년 1월 직급제를 폐지하고 ‘매니저’로 호칭을 통일했지만 황창규 회장 체제로 전환된 2014년, 직원 사기진작과 만족감 부여를 위해 기존 직급제도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KT 관계자는 “(직급제 부활은) 특정 직급을 가지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업무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었다”며 “외부 사람과 접촉할 때 혼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면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 관계자도 “외부 사람과 미팅을 할 때 상대방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직급인 분을 만나는 건지 궁금해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에 대해 추가로 설명을 해줘야 할 때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최근에는 사내에서만 통일된 호칭을 사용하고 외부에서는 기존 직급을 사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CJ관계자는 “불필요한 혼란을 없애기 위해 외부에서는 대리 과장 상무 등 일반적인 호칭 체계를 사용한다”며 “호칭을 통일하는 목적은 회사 내부에서 업무를 수평적으로 하고 창의적으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인 만큼 내·외부에서 호칭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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