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부평공장 [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세정 기자] 법정관리 문턱에서 가까스로 회생한 한국지엠주식회사가 또다시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인천 부평의 디자인센터와 기술연구소, 파워트레인 부서를 별도의 R&D 법인으로 분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노동조합이 '철수를 겨냥한 포석'이라며 주장하고 나선 탓이다.

한국지엠은 법정관리 사태 뒷수습과 경영 정상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런 와중에 노조가 '철수'라는 민감한 프레임을 꺼내든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2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는 제너럴모터스(GM) 자본이 추진하는 법인 분리를 저지하기 위해 이날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한다. 노조는 15~16일에 쟁의행위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만약 투표에서 찬성이 가결되고, 중노위의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지면 노조는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노조가 파업을 꺼내든 이유는 지난 4일 오전 한국지엠 이사회가 통과시킨 안건 때문이다. 이사회는 디자인센터와 기술연구소, 파워트레인 관련 사업을 분리해 글로벌 제품 개발 업무를 전담하는 별도의 신설 법인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GM의 중형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디자인과 차량 개발 업무를 가져와 디자인센터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목적이다. 

총 10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2대 주주인 KDB산업은행 측 3명의 이사는 법인 설립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GM 측 7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사회는 오는 19일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회 이 안건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노조 측은 "한국지엠의 장기적 미래를 위해서는 지금의 단일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합당하고 유리하다"며 "법인분리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새로운 구조조정의 꼼수다. 법인 쪼개기는 생산과 연구개발을 분리하고 분할 매각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인이 분리될 경우, 신설 법인에 대폭적인 신규 투자와 연구 개발 프로젝트가 확보되지 않으면 재무구조가 쉽게 부실해지고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한국지엠이 법정관리 직전에 내몰린 4월, 부도 처리시 생산시설을 없애고 연구·디자인 센터와 판매 조직만 남기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때문에 노조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이 지난해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지엠을 둘러싼 의혹은 더욱 가중됐다. 10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윈회(이하 산자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이 출석을 거부하면서 노조가 주장한 '먹튀' 논란에 힘이 실리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날 국감에 참석한 이동걸 산은 회장은 한국지엠의 철수 가능성을 강하게 일축했다. 또 산은이 '한국지엠 주주총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이유가 법인 신설을 반대하는 목적이 아니라, 분할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이 결여됐기 때문이라는 입장도 전달했다.

이 회장은 "GM에서 64억 달러를 투입했고 계획대로 정상화를 추진 중이다"며 "한국지엠이 10년 동안 생산활동을 약속한 만큼, 10년 뒤 먹튀 여부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카젬 사장은 산자위 국감 불출석 사유서에 "산은이 제출한 가처분 신청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가처분 신청 결과는 17일 이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법적 문제가 해소되는 만큼, 카젬 사장은 이달 22일 열리는 정무위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한다. 29일 예정된 산자위 종합감사의 증인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출석 요구시 이에 응한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노조가 섣불리 철수를 거론한 것이 '악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지엠의 판매가 정상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구설수에 오르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지엠은 2월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직후 판매 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가 빠져나가는 등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경영정상화 방안을 내놓고 신형 스파크와 이쿼녹스 등 신차 2종을 투입했지만, 여전히 판매 실적은 전년 대비 35% 가량 위축된 상태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소비자 신뢰 회복까지 시간이 걸릴 것을 각오하고, 다양한 사회공헌활동과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먹튀 주장과 파업 예고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가 법인 설립을 반대하며 요구한 '특별단체교섭'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조는 한국지엠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연구개발과 생산, 판매, 정비부품, 비정규직 정규직화 부문에서의 노사협약체결과 군산공장 무급휴직자 생계비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무급휴직자 생계비 지원 방안이다. 당초 노사는 5월 28일 고용안정특별위원회 합의에 따라 무급휴직자의 생계비를 정부와 노사가 함께 지원키로 합의했다. 생계비는 당장 12월부터 부평·창원공장으로의 배치전환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지원된다.

하지만 노조는 이번 특별교섭으로 사측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적정한 생계비를 지급하라고 요구한다.

노사 고통분담 조건에 따라 노조도 무급휴직자의 생계비를 분담해야 한다. 하지만 임금 하락과 이에 따른 조합원 불만이 불가피한 만큼, 사측이 모든 부담을 지도록 특별교섭을 실시하기 위해 철수 논란을 수면 위로 부상시킨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노조가 무급휴직자 생계비 지원을 사측에 전적으로 부담시키기 위해 철수설을 끄집어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면서 "한국지엠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판매 회복의 속도가 더뎌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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