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방식 연관 단어.<사진제공=대한상의>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알아서 해와 봐.”

A 임원이 프로젝트를 맡기며 내린 지시다. 담당팀은 비상이 걸렸다. 첫 보고에서 A 임원은 “답답하네, 그렇게 의중을 모르냐”며 다그쳤다. 두 번째 보고에선 “시킨 것만 하냐”는 반응이 나왔다. 프로젝트 결과를 보면서 CEO가 내뱉은 첫 마디는 “이게 뭐야?”였다. 팀은 다시 야근을 시작했다.

이 같은 국내기업 업무방식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0일 발표한 ‘국내기업의 업무방식 실태 보고서’를 통해 ‘스마트워크’를 외치지만 여전히 스마트하지 못한 업무방식 현실을 꼬집었다. 이번 보고서는 상장사 직장인 4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업무방식 실태와 함께 직장인·전문가 인터뷰로 도출한 해법도 담았다.

직장인들은 국내기업 업무방식 종합점수를 ‘45점’으로 평가했다. 부문별로는 업무 방향성(업무의 목적과 전략이 분명하다)30점, 지시 명확성(업무지시 시 배경과 내용을 명확히 설명한다) 39점, 추진 자율성(충분히 권한위임을 한다) 37점, 과정 효율성(업무추진 과정이 전반적으로 효율적이다) 45점으로 모두 50점 이하로 조사됐다. 국내기업의 일하는 방식이 전반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업무과정이 비합리적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원래부터 의미 없는 업무’(50.9%)라는 응답이 첫 손에 꼽혔다. 다음으로 ‘전략적 판단 없는 ‘하고보자’식 추진관행‘(47.5%), ‘의전·겉치레에 과도하게 신경’(42.2%), ‘현장실태 모른 체 Top-down 전략수립’(41.8%), ‘원활치 않은 업무소통’(40.4%), ‘상사의 비계획적 업무지시’(38.8%) 순으로 조사됐다.

‘업무방식’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비효율’, ‘삽질’, ‘노비’, ‘위계질서’ 등의 부정적인 단어가 86%를 차지한 반면 ‘합리적’, ‘열정’, ‘체계적’ 과 같은 긍정어는 14%에 불과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업문화는 분위기나 복리후생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그 자체다”며 “여전히 구시대적인 지금의 업무방식으로는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비효율적인 업무방식 영향으로 ‘무너진 워라밸’, ‘수동적 업무태도’, ‘세대갈등’을 꼽았다. 조사결과 직장인들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점수를 ‘57.5점’으로 평가했다. 100점에 가까울수록 회사 업무와 개인의 삶을 균형있게 영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워라밸이 낮은 원인을 묻는 질문에 ‘불필요·모호한 업무’(30.0%), ‘무리한 추진일정 설정’(29.5%), ‘상사의 갑작스러운 지시’(7.9%) 등 비과학적 업무 프로세스가 67.4%로 우위를 차지했다. ‘절대 업무량 과다’(16.3%), ’칼퇴 눈치주는 기업문화’(12.3%)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비과학적 업무방식이 직장인의 동기부여를 저해하고 수동적인 업무태도를 만든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제조업체 기획팀에 근무하는 A차장은 “경영진 지시사항이니 열일 제쳐두고 무조건 빨리 하라는 풍토, 모호한 지시 해석하느라 오락가락하는 업무방향, 과도한 보고서 꾸미기 덕에 연일 야근하다보면 대체 왜 이렇게 일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회사 업무를 하며 보람을 느끼기 어렵다’고 응답한 직장인은 71.0%, ‘직원은 회사의 소모품이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도 57.4%로 조사됐다. ‘업무방향이 이상해도 지시받은 대로 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직장인의 60.1%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업무방식에 대한 긍정 응답률.<사진제공=대한상의>

보고서는 비효율적인 업무방식이 직장 내 세대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내놨다. 실제로 비효율적인 업무방식에 대한 젊은 직장인들의 불만족도가 높았다. 업무방식에 대한 직급별 긍정응답률을 살펴보면, ‘업무 합리성’에 대한 임원의 긍정답변율은 69.6%이었으나 사원은 32.8%를 기록해 2배 차이가 났다. ‘동기부여’의 긍정답변율은 임원 60.9%, 사원 20.6%로 약 3배차가 났다.

보고서는 “임원과 부장 등 상급자들은 원래 조직이 그런 거지, 우리 조직은 괜찮다는 생각에 빠져있다”며 “반면 상급자 업무방식에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불만은 크다”고 말했다.

이경민 이머징 리더십인터벤션즈 대표는 “요즘 젊은 세대를 그저 워라밸만 챙기는 개인주의자로 바라보기보다 동기부여나 자기성장을 바랄 수 없는 업무과정을 겪으며 일 대신 회사 밖 삶을 선택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오히려 이들은 자기가치 실현욕구가 강해 동기부여만 되면 일에 몰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업무방식에 대한 직급별 의식.<사진제공=대한상의>

원인을 심층파악하기 위한 직장인 인터뷰 에서 업무방식에 대한 직급별 대표 문제 인식이 드러났다. 변화하는 시대상과 경영환경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업무관행이 전 직급에 걸쳐 다양한 고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얼핏 보기에 각 직급이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문제의 원인은 일맥상통한다”면서 “‘Why에 대해 고민과 협의하지 않는 리더십’과 ‘Why를 설명하거나 질문하지 않는 소통문화’가 근인이다”며 이에 대한 해결을 강조했다.

박준 대한상의 팀장은 리더십을 1차 근인으로 지적하고 “현재 대다수 리더들은 명확한 성공모델에 따라 하달된 전략을 이행하는 산업화 시대 ‘소방수형’ 인재로 길러져 Why를 고민하고 협의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며 “스스로 정답을 찾아야 하는 경영환경 변화와 맞물리며 리더십이 성장통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심전심과 상명하복을 바라는 소통문화 역시 비합리적 업무방식 주범으로 지목됐다. 모호하게 지시해도 ‘척하면 척’ 알아야 하고 질문하면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하는 소통문화 때문에 불필요한 일이나 업무과정 전반 비효율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업무 경험이 많아야 ‘척하면 척’이 가능한데 직급이나 역량에 대한 고려 없이 이심전심만을 바라니 직원은 깜깜이 업무에 답답하고 상사는 상사대로 결과물에 불만족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 분석결과 상급자일수록 상사 소통역량을 높게 평가했는데 ‘상사가 목적과 추진배경을 충분히 설명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이 부장·임원이 52.2%, 과장·차장 41.3%, 사원·대리 34.4%로 나타났다. ‘추진방향과 예상결과를 충분히 협의하는지’, ‘업무지시나 피드백 내용이 명확한지’ 에 대해서도 직급이 낮을수록 부정적 평가가 많은 경향이 발견됐다.

한편 대한상의는 기업의 업무방식 개선을 위한 구체적 지원책도 마련했다. 이번 진단결과와 해법을 담아 책자 ‘Why Book’을 발간했다. 사원부터 CEO까지 각 직급별로 처한 비합리적 상황을 6개의 질문(Why)으로 구성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또한 소통으로 성과를 내는 실습중심의 리더십 교육을 개설해 새로운 리더십 훈련 기회도 제공한다. 관련 문의는 대한상의 기업문화팀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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