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롯데케미칼 타이탄 공장 전경.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유독 롯데케미칼만이 맥이 빠져 있는 모습이다. 
 
13일 유가증권시장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 실적둔화가 전망되면서 주가가 최근 3개월 동안 24.4%, 최근 6개월 동안에는 32.7% 떨어진 28만8000원을 기록했다. 전일 오전 중에는 종가 대비 70% 떨어진 28만5500원을 기록했다. 이는 52주째 신저가로 이달 들어 하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하락세다.

삼성증권은 이날 어닝쇼크를 전망하며 목표주가를 기존 45만원에서 36만원으로 하향조정했다. 미래에셋대우도 48만원에서 42만원으로 낮춰 잡았다. 주가가 52만원까지는 상승할 것이라는 그간의 전망이 뒤바뀐 것이다.

특히 이 같은 하락세는 '석유화학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현상이어서 업계에서도 여러 원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롯데케미칼이 공격적 확장으로 영업이익 부문에서 상반기 1위를 기록했으나, 연구개발(R&D)에 소홀했던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화학산업의 매출대비 R&D비중은 1.7% 가량이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여기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0.48%에 그쳤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화학산업은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R&D비율을 놓고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롯데가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에틸렌과 같은 범용 제품 양산에만 치중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김준하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실제 LG화학, 한화케미칼 등 몇 개 기업을 빼면 100%가 석유화학에만 의존해왔다"며 "중장기적 생존과 기술력 강화를 위해 기존의 제품을 넘어서는 포트폴리오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측은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사업이 이미 다각화돼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존의 '에틸렌' 기반 품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해 경쟁업체가 증가하게 되면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롯데케미칼의 에틸렌 연간 생산량은 250만톤이다. 에틸렌은 나프타분해설비(NCC)에서 생산되는 범용 기초소재다. 하지만 롯데캐미칼은 지금껏 에틸렌 생산시설 증설 위주로 투자를 진행해왔다. 현재 진행 중인 말레이시아 타이탄 에틸렌 공장 증설, 여수공장 증설 및 미국 에탄크래커(ECC) 사업 등이 완료되면 올해 말에는 연간 총 450만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반면 경쟁업체 LG화학은 이 같은 덩치 키우기 전략을 넘어 고도화에 한창이자. 에틸렌에 추가적 공정을 가해 폴리올레핀(PO) 등 고부가 기초소재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그간 생명과학 부문을 인수하는 등 고도화 전략을 꾸준히 펼쳐온 LG화학은 지난 7월 2조8000억원을 투자해 나프타분해시설 및 고부가 폴리올레핀(PO) 라인을 80만톤 가량 증설키로 했다. 또 고부가제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충남 당진에 미래 유망소재 양산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또 인수합병에 의존한 덩치 키우기식 경영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1979년 호남석유화학으로부터 시작해 2016년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 케미칼 부문을 인수까지, 인수·합병 방식의 성장 전략에만 의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호남석유화학은 1976년 정부가 여천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면서 설립한 국영기업으로, 신격호 전 롯데그룹 회장이 중화학공업 진출을 위해 인수한 것이었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의 공시 현황을 보면 R&D 대부분이 호남석유화학 시절에 이뤄진 실적들이다. 최근 신소재로 각광을 받는 열가소성엘라스토머도 1996년 개발을 시작해 2000년부터 상업생산이 된 품목이며, 초고층용 콘크리트 혼화제도 건설자재 전문기업인 삼표가 2008년 개발한 것이다.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허수영 롯데케미칼 부회장은 "R&D 투자를 전체 매출의 1%까지 끌어 올릴 것"이라면서 포트폴리오 강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 회장이 올해 구속되면서 경영 의사 결정이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세계 경제 성장률이 평균 3%인 가운데 에틸렌 수요 성장은 4% 수준에 달한다. 단기적으로 공급이 과잉될 수 있지만 계속 수요가 받쳐줄 것이라는 예상에 최근 화학업계는 물론 정유업계까지 생산시설 증설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롯데케미칼 입장에서는 위협 요인이다.

에쓰오일·SK에너지·GS케미칼·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까지 '정유에서 화학으로' 나아가기 위해 올레핀 생산 설비를 갖추고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양산에 나서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존에 '잘되는 사업만 사들인다'는 전략에 치중하다보면 예방적 경영을 펼치기 어렵다"며 "범용 중심의 사업구조가 최대 약점임에도 대·내외적 문제로 인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 것이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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