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예고와 엘리엇 공세 등이 겹치며 삼성, 현대차, SK 등 주요 그룹이 신산업 대신 지배구조 개편에 애를 쓰는 모습이다.[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최근 잇달아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신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삼성, 현대차, SK 등 주요 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기업 규제 방안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된데다 엘리엇 지배구조 개편 요구 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은 최근 현대차에 서한을 보내 지배구조 개편을 재차 압박했다. 골자는 현대모비스 애프터서비스(A/S)사업 부문을 현대차와 합병하고 현대모비스 모듈과 핵심 부품 사업을 현대글로비스와 합치라는 것이다.

엘리엇은 이번 제안이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고 그룹 장기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규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 재차 압박으로 신산업에 박차를 가하던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 숙제에 다시금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현대차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스마트카 등 신산업에 5년간 23조원 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고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한차례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된 현대차는 엘리엇 압박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가 미래 산업 발굴에만 마냥 집중할 수 없는 이유다.

삼성 처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AI, 5G, 바이오 등 신산업에 5년간 약 25조원 규모 투자계획을 밝히고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던 삼성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한 마디에 다시금 지배구조 해법 찾기로 고개를 돌리게 됐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3년 내로 지주사 전환을 안 하거나 못하면 앞으로도 영원히 못 하는 것”이라며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지주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을 현행보다 10%포인트 올리는 방안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삼성이 지주사로 전환할 때 필요한 삼성전자 지분은 현행 20%에서 30%로 늘어난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290조원에 달하는 만큼 삼성그룹이 추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무려 30조원에 달한다. 신산업 투자 규모인 25조원을 상회하는 규모다.

8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신산업 투자계획을 밝힌 SK그룹도 공정거래법 개정 변수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양새다. 특히 SK텔레콤을 중간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분 확보라는 새로운 숙제를 안게 됐다.

지난 9일 SK 계열사 SK텔레콤은 서비스위원회와 기술위원회 설립, AI센터 통합을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를 두고 SK가 SK텔레콤을 중간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한 기반 다지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지난달 열린 투자자 간담회에서 SK텔레콤을 중간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고 투자회사 밑에 SK하이닉스, SK플래닛, SK텔레콤 등 사업회사를 배치하는 방식이다.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로 전환하면 SK는 SK하이닉스 활용 폭을 보다 넓힐 수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인수합병(M&A)에 나서려면 피인수 기업 지분 100%를 인수해야 한다.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가 되면 SK하이닉스는 신설 중간지주사의 자회사가 되는 만큼 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좀 더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변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신규 설립된 지주사가 자회사를 소유하기 위한 의무 지분율을 현행 20%에서 30%로 상향했다. 현재 SK텔레콤이 보유한 SK하이닉스 지분은 20.07%다. 이에 따라 중간지주사를 새로 설립하려면 약 5조원을 들여 하이닉스 지분 9.93%를 추가로 매입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지배구조 개편이 우선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신산업 발굴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며 “당국이 강조하는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지배구조 개편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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