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저임금 등 정부 정책에 각을 세우는 가운데 정부가 경총에 대한 대대적인 지도점검에 나서자 일각에서 '대기업 목소리 지우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대흥동 경총회관.[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정부가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단체가 사실상 경총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 패싱’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노사정책실 소속 직원 10명을 경총에 투입해 지도점검을 실시했다. 고용부 직원이 경총 사무실에 상주해 업무 전반을 조사하는 것은 1970년 경총 설립 이후 처음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경총은 고용부 설립허가를 받은 곳으로 관리 감독 대상”이라며 “회계 부정 등 의혹이 언론 보도로 제기돼 사실 관계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 지도점검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총은 2010년부터 올해까지 약 70억원 규모 정부 용역사업을 수행하면서 금액 일부를 임원 특별상여금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김영배 전 부회장 시절 일부 사업 수익을 유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총 관계자는 “(이번 지도점검이)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적폐 청산’ 일환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는데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일반적인 지도점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대기업 대변 단체인 경총이 최저임금 등 정책에 각을 세우자 정부가 압박에 들어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가 통상 지도감독 과정에 직원 2~3명을 파견하는 것과 달리 10명을 파견한 것도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경총은 최근 ‘친노동’ 의혹을 받아온 송영중 전 부회장 대신 김영배 부회장을 임명했다. 이후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 노동정책에 기업 우려를 전달하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대변 단체’로 불릴 만한 곳은 경총이 유일하다. 과거 재계 맏형이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존폐 위기까지 내몰리는 등 지금은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에 이어 회원사 탈퇴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전체 수입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임대 사업 수입도 급감한 상황이다. 실제로 50층 규모로 건립된 여의도 전경련 회관 47층 가운데 16개 층 이상이 비어있다.

전경련을 대신해 재계와 정부 간 소통창구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는 적극적 입장표명 대신 중재로 기조를 잡고 있다. 대한상의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을 모두 회원사로 두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회원사 중 중견·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97%에 달한다. 대기업 비중이 70%를 넘나드는 경총과는 성격이 다르다.

대기업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는 가운데 재계는 대한상의와 같은 중재 역할도 필요하지만 대기업 입장을 선명하게 대변하는 역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중견기업은 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은 소상공인연합회에서 각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제 단체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며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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