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전세자금대출 홍보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정부는 전세자금대출을 활용 부동산 투기 수요억제를 위해 다음달부터 부부합산 연간소득 7000만 원 이상 가구와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 자격 제한을 강화했다. 하지만 실수요자에게서 반발이 거세자, 하루만에 이를 철회하며 졸속대책이 아니냐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민석 기자] 금융당국이 투기를 잡기 위해 가계대출정책 강도를 높이는 가운데, 실수요자가 외면 받는다는 비난에 시달리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3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주택 가격 안정화 방안으로 실행한 전세자금 대출 제한 정책을 하루 만에 철회했다. 대책을 내놓은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방향이 틀어진 상황을 놓고 졸속 대책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가 발표한 대책의 핵심은 주택금융공사 상품 가운데 하나인 ‘전세보증대출’ 이용대상에 소득제한을 건 것이다. 전세보증대출은 집을 사려는 사람이 시중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때 주금공에서 최대 2억2200만원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상품의 대상은 임차보증금이 5억원(지방은 3억원) 이하인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의 5% 이상을 계약금으로 지급한 세대주다. 금융위는 적용 대상 기준에 주택보유 여부, 소득제한을 걸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시중은행은 보증기관에서 보증을 받아오지 않으면 전세자금대출을 지급하지 않는다. 보증기관이 전세대출의 80%를 보증하기에 은행 입장에선 리스크가 매우 낮아지기 때문이다. 올해 3월 기준 전세대출 가운데 98%는 전세보증을 받은 대출이다.

전세보증을 실시하는 기관은 주금공, SGI서울보증보험,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있지만 이 가운데 주금공은 50%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 잔액인 45조6926억원 가운데 주금공 전세자금 보증액은 23조7258억원이었다.

전세대출보증에 대한 소득요건 제한은 국회에서 불거졌던 문제였다. 지난해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는 국정감사에서 금융위에게 고소득자의 전제자금보증 이용을 제한하라고 주문했다. 당시 연소득 1000만원 이하 저소득 계층의 전세자금보증 거절률은 11.98%인데 반해 1억원 이상 고소득자 거절률은 5.18%로 현저히 낮았다.

금융위는 이 같은 배경으로 전세보증대출 대상자를 부부합산 연소득 7000만원 이하로 제한했다. 단순 계산으로 월소득이 583만원이고, 1인 기준으로는 291만원이다. 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는 월 291만원을 벌면서 고소득자로 분류된다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가 소득제한을 7000만원으로 설정한 이유는 기존 보금자리론의 소득기준 요건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또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설정된 상위 30%(소득 8분위) 평균이 588만원이기 때문에 이를 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는 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조사범위가 넓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등장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다른 자료인 '2016년 신혼부부통계'에 따르면 전세자금대출 실수요자인 3040 부부 소득은, 외벌이 신혼부부의 경우엔 90.4%가 소득 7000만원 미만 가구에 해당한다. 반면 맞벌이 가구 가운데 7000만원 이상을 벌지 못하는 부부는 59.4%다. 금융위 기준에 따르면 40%에 육박하는 부부가 전세자금대출이 제한된다.

또 정부가 15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총량과 건전성 관리를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10월부터 관리지표로 도입하는 방침을 정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더 어려워진 영향도 있다. DSR는 개인이 1년간 갚아야 하는 모든 종류의 부채 원리금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3월부터 시중은행에 도입되기 시작한 DSR는 7월을 기점으로 저축은행, 보험사 등 제2금융권으로 확장돼 적용된다.

DSR가 시행되며 자금줄이 막히자 대출수요는 전세자금 쪽으로 급격히 쏠렸다.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은행의 4월 말 기준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44조631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2조1543억원보다 38.8%인 12조4771억원 증가한 수치다.

시중은행 대출이 제한되자 제2금융업권 대출이 풍선효과를 맞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보험회사 대출채권 잔액은 1분기 말보다 4조4000억원 증가한 215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분류별로 보험계약대출 1조2000억원, 주택담보대출 2000억원, 가계대출 118조5000억원, 기업대출 95조8000억원 씩 증가했다.

지난해 결혼해 신혼인 김 모씨(38)는 맞벌이로 연 7200만원 가량 버는데도 아직 대구 수성구에 사는 부모님과 동거중이다.

김 씨는 "곧 독립을 해야 하는데 당장 집을 사기에는 모아놓은 돈이 없는 상황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기가 어렵다"면서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까마득하다"고 말한다. 그는 "7000만원 소득 문제는 서울 뿐 아니라 집 값이 높은 지방에서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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