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에서는 일정에 올라 있는 남북정상회담을 9월 안에 평양에서 갖기로 합의했다.”

지난 8월13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의 마지막 대목이다. 당초 평양정상회담이 8월 말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9월 안’이라는 문구 합의로 갈음했다. 리선권은 회담 말미에 판문점 정상선언을 한국이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마디로 날짜를 못박지 않을 테니 9월 평양정상회담 전까지 한국은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는 으름장이다.

이 합의가 나오던 시점에 한반도의 외교일정은 대체로 이렇게 전망됐다. ①늦어도 8월 하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②9월 초순 정권창건일 즈음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북과 네 번째 북중정상회담, ③성대한 9.9절 70주년 행사, ④9월 중순 남북정상회담, ⑤9월 하순 뉴욕에서의 남북미 정상 간의 종전선언과 이어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UN총회 연설.

그러나 한반도 정세가 늘 그렇듯 첫 발부터 삐끗했다. 폼페이오 방북 하루 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를 지시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처음부터 폼페이오의 방북을 반대해 왔었다. 그럼 다음 수순은 어떻게 될까? 9월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은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까? 우선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 추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대변인도 “남북정상회담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며 “북미 간에 교착 상황이 돼서 오히려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청와대 추진의지에 반하는 정책적 환경이 상당히 강력하다. 무엇보다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올해만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상황에서 올해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연기된다면 어떻게 될까?

▲ 야당의 공세…문 대통령은 불편해진다 

우선 국내정치 상황부터 묘하게 변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은 대통령의 방북 연기가 발표되면 일제히 환영 논평을 낼 것이다. 이참에 대북정책 기조를 바꾸라고 한술 더 뜰 수도 있다. 민족공조가 아니라 한미공조가 북핵문제 해결의 핵심이고, 국제사회의 제재 분위기와 다르게 움직이는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북제재 이완은 북핵문제 해결의 마지막 평화적 해법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 더불어 민주당은 난처해진다. 강한 여당을 주장하는 이해찬 신임대표가 들어서자마자 무산위기를 맞게 될 정상회담이 결코 반가울 리 없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당이 직접 교착상태에 있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조선노동당과의 연석회의를 추진하겠다고 제안할지도 모를 일이다. 

▲ 난감해진 북한…김영철 지고 리용호 뜬다

북한은 어떨까?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했을 당시 우리 대통령이 위기를 넘겨줬듯이, 북한은 이번에도 우리 정부가 잘 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연기되면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꼴이 된다. 아직은 표정을 숨기기에는 경륜이 부족한 김정은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노동신문, 조선중앙TV가 대대적으로 보도한 우리 대통령의 방북에 문제가 생겼다고 공개할 경우 북한 주민들을 설득하기가 쉽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첫 조치로 대남, 대외 매체인 평양방송이나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우리 정부에 대해 미국 눈치나 보는 겁쟁이라는 비난 성명으로 압박하는 한편, 우리 민족끼리 난관을 헤쳐 나가자며 정보기관 간의 채널을 가동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입장이 난처한 인물은 다름 아닌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다. 김영철은 근본적으로 ‘속이는 자’다. 2009년 군정찰국, 당작전부 그리고 35국을 합쳐서 만든 정찰총국을 거쳐 통전부에 올 때까지 비밀공작부서에서만 복무했다. 상대방을 속이는 일만 해온 사람이다. 천안함 폭침도 속일 수 있었다고 믿었을 것이고, 소니픽처스 해킹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핵보유국 인정 기초 위에서 미국과의 핵군축협상을 하겠다는 속내를 숨기고, 주어조차도 모호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합의로 국제사회의 압박을 벗어나 보려던 전략이 파국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미국도 김영철을 협상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8월25일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이 취소된 결정적 계기가 김영철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보낸 적대적인 비밀편지였다. 여기에 평양정상회담까지 연기되면 김영철은 협상 테이블에서 명패를 올리기 어렵게 된다. 어차피 핵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전문적 식견이 없는 인사였으므로 북핵 협상에는 적임자가 아니었다. 이제 리용호 외무상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 정상회담 연기는 위기 아닌 ‘기회’

남북정상회담 연기가 반가운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이 대화를 중단한 마당에 한국이 다시 운전자론을 들고 나오면, 동맹국으로서 난감해진다. 직접적인 언어로 반대하기는 어렵고, 외교적 용어인 이해한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미국은 한국 정부의 용기 있는 결단이 반가울 것이다. 미국은 외교적이고 평화적인 북한 핵문제 해결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불씨로 살려두면서, 중간선거 이후에도 군사적 옵션도 배제하지 않겠다던 최대의 압박 작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 당분간 대북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이끌어 내는 데 집중하면 중국도 쉽게 뒷문을 열며 북한 핵보유 완성의 길을 열어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9월 평양정상회담의 연기는 비록 우리 대통령을 국내 정치적으로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은 있지만, 평화적 북핵 해결의 모멘텀을 살리고, 다시금 한반도 위기설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을 외교안보전략이 될 것이다. 평양정상회담의 연기는 한반도의 위기가 아닌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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